- 창작무협. 무림독패(武林獨覇)
- 44 - 첫 대면 그리고.......
백도문 객청각.
[흥, 우리들을 꿔다놓은 보릿자루로 아는가보군!]
12개의 자리가 마련된 원탁 가운데서 너덜한 옷을 입고 있는 거지 하나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노개, 입 조심하게!]
그 곁에 있던 도사 하나가 입을 열었다.
[흥, 허진인(許眞人) 혼자서 득도하시구려! 난 좀이 쑤셔서 더는 못 앉아 있겠소!]
[노개도 별수 있군.......]
또 한사람이 입을 열었다.
[뭐야? 이 철가(鐵家)가 정말 못 하는 말이 없구만!]
[아미타불....... 시주들, 벌써 한시진이 넘도록 아옹다옹만 하고 계실거요?]
이 방에 모인 사람들.......
개방의 방주인 주천방, 무당파의 장문 장명후의 사제인 태을진인(太乙眞人) 허석태(許析太), 소림사의 방장 공명대사(空明大師), 그리고 정도제일가(正道第一家)라 불리우는 철혈세가(鐵血世家)의 가주 철무진(鐵武振) 이렇게 네 사람이 자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표정이 어딘가 모르게 병색이 만연했다.
그들은 어떤 독에 중독이 된것처럼 얼굴이 검붉게 변해 있었다.
[듣자하니, 북경에 구원신의가 나타났다던데.......]
[그렇다고 하더군.]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중원의 복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그런데 그가 무림독패를 꿈꾸는 신선궁의 인물이라니.......]
공명대사가 아쉬움이 가득서린 말을 뱉어내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나저나 왜 맹주가 우리들에게 독을 썼는지 알고 계시오?]
돌연, 주천방이 나머지 세사람을 차례대로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그걸 알면 우리가 이렇게 당했겠소? 으......! 생각만해도 치가 떨리는군!!]
철무진이 대뜸 큰소릴 치며 반박했다.
[우리는 백도문에게 7할의 제자들을 내주었소. 그런데도 구원신의, 아니 천외무승이라는 자는 예전부터 몸파는 계집들 조차 거들떠 보지도 않는 본방의 제자들에게 신수(神手)를 아끼지 않았었소.]
[그건 우리들도 마찬가지요!]
나머지 세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하자, 주천방은 시익 웃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비록 남들이 먹다 버린 찬밥을 먹는 거지들이지만 그래도 은혜는 아는 법, 자신들의 형제를 살려준 은인에게 어찌 칼을 디밀수 있겠소?]
[음.......]
나머지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의 뜻을 나타냈다.
[맹주가 우릴 이렇게 만든 것도 그런 연유일게요. 우리들을 인질로 해 제자들을 부릴려는.......]
[설마......!!]
무당파의 허석태가 아연하게 놀라며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무량수불....... 그게 사실이라면...... 오......!!]
[나무아미타불.......]
[나도 제발 아니길 바랄 뿐이오.......]
x x x x
활생원.
[상공, 이것좀 보세요.......]
소홍이 하나의 방문을 들고 막 치료를 끝낸 고진을 찾았다.
[무슨 일이기에 그리 호들갑이야?]
그는 그녀가 건네주는 방문을 받고서는 지긋이 놀랐다.
그 방문은< 무승이 초아를 찾는다>라고 쓰여진 그 방문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엔 또다른 글씨가 적혀져 있었다.
[삼경 재면?]
[삼경에 다시 만나잔 말이지?]
[상공, 근데 어디에서 만난단 말인지.......]
그는 빙긋 웃으며 아리송해하는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인연이 있으면 만나질테니 염려하지마....... 근데 종원이는?]
[호호, 오제는 아무래도 도소저에게 끌리는가봐요.]
소홍은 웃음을 머금은채 대답했다.
그러자, 언제 들어왔는지 타미르가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
[큰일이야, 큰일....... 하나밖에 없는 제자가 장가라도 간다고 그러면 난 어떡하냐구......! 에구.......]
순간, 고진과 소홍은 참았던 웃음을 터트리고야 말았다.
[하하하하!]
[호호호호.......]
x x x x
용봉객잔.
[도소저.......]
[아이, 왜 자꾸 귀찮게 따라 다녀요?]
도소군이 앙칼지게 소리치자, 오종원은 그 자리에 멈춰서는 하나의 약병을 그녀에게 건내려했다.
[이걸 받아 주시오.......]
[흥, 제가 왜 그걸 받아요! 싫어요!]
[도소저.......]
[정말, 귀찮게 왜 그래요?]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광경을 2층에서 지켜보는 도문현과 청소옥은 터지려는 웃음을 참으려 했는지 표정이 가관이었다.
[푸......, 푸후후훗......!!]
[푸하하하하하!]
두 사람이 이렇게 웃음을 짓는 것은 조금전의 상황이 웃음을 자아내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오종원과 도문현은 예전에 만났던 적이 있었기에 거리낌없이 애기를 주고 받았는데, 어쩌다보니 도소군의 얘기가 나왔던 것이었다.
오종원은 도소군을 아내로 맞이하고 싶다고 도문현에게 넌지시 뜻을 비췄고, 도문현도 딸아이가 콧대가 높고 고집이 세다고 말함에 반승낙을 했던 것이었다.
그말이 끝나자마자 오종원은 몸에 좋다는 영약을 하나로 집결시켜 만든 천령옥황생단(天靈玉凰生丹)을 도소군에게 주려고 이렇게 뒤따라 다니는 것이었다.
기실 천령옥황생단을 복용한 적이 있는 도문현은 그 약이 죽은사람도 살려내는 명약임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도소군은 그런 영약을 쥐약 보듯하니 어찌 우습지가 않겠는가.
이 사실을 안 청소옥은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노심초사하고 있던 중에 기어코 웃음을 터트리고야 만 것이었다.
x x x x
그날밤.
삼경을 알리는 타경소리에 고진은 연기처럼 객잔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그가 다시 모습을 보인 곳은 저자거리 한 가운데였다.
벽에는 하나의 종이가 나풀거리며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그는 그 종이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이것은 지도(紙刀)......! 최소 3갑자이상을 지닌 내가고수란 말이군.......)
종이는 벽에 박혀 있었던 것이었다. 틈사이에 끼워진 것도 아니오, 풀칠로 벽에 붙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단단한 벽을 뚫고 박혀 있었던 것이었다.
그가 그 종이를 벽에서 뽑아 내자 그 끝에는 자잘하게 쓴 글자가 나타났다.
[성밖 백리정에서 기다리겠다고......?]
그는 그 글을 다 읽고 나서는 가볍게 튕기자< 퍽!>소리와 함께 종이는 다시 벽 사이로 깊숙히 박혀 버렸다.
<휘이이잉.......>
적막한 저자거리를 밤바람이 스산하게 지나갈 무렵, 하나의 인영이 만월을 가르며 성밖으로 사라졌다.
x x x
백리정(百里亭).
(함정......?)
고진의 발이 땅에 닿는순간 주위에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한둘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그대가 천외무승이오?]
백리정 안에서 들려오는 사내의 음성이었다.
고진은 그가 북해신궁의 소궁주가 아님을 예측하고 있었던 탓에 놀라는 표정도 없었다.
(과연, 대단한 놈이군......!)
사내는 아무런 동요도 하지 않는 그를 보자 내심 혀를 찼다.
[그렇소....... 본인의 또다른 이름이 천외무승이오.]
[후훗....... 본인은 사마천이라 하오.]
[사마천......?! 백도문의 맹주......!]
순간, 고진은 내심 묘한 감정이 치솟고 있었다. 그는 그러한 감정이 무엇인지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그것은 소위 말하는 살심(殺心)이었다.
(간사한 놈......! 중원을 농락하고 있는 사악한 놈!)
분명 고진과 사마천은 난생처음 대면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철천지 원수를 바라보듯 살기등등하게 서로를 노려보며 으르렁대고 있었다.
(천외무승......, 역시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다.......)
사마천은 고진을 호적수(好敵手)로 생각하고 있었다.
헌데, 고진도 그를 호적수로 생각할까?
(놈의 주공(主攻)은 검. 그리고 주변에 매복해 있는 자들...... 모두 일류급 고수들이다. 천여명 정도 되겠군....... 흥, 실력이 안되니 쪽수로 밀어 붙일 심산이가 보군. 가소로운 자 같으니라구.......)
고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나를 보자고 한 이유가 무엇이오?]
그러자 사마천은 비스듬이 몸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천외무승, 난 천외비급을 원한다.]
그 한마디는 오랫동안 백도문 다스려운 영도자의 풍도가 담겨져 있었다.
헌데 조건이 너무나도 터무니없지 않은가? 천외무승더러 천외비급을 달라니.......
그것은 검사(劍士)에게서 검을 빼앗아 가는것과 진배없는 조건이었기 때문이었다.
[훗, 자신있으면 어디 앗아가 보시구려!]
당당하다 할까 무모하다고 해야할까? 어쨌든 그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 말을 다시 주어담기엔 너무나 늦어 버렸다.
[광오한 놈이로군! 내 손으로 직접 네 놈의 목을 따 버리겠다!]
사마천은 검을 출수하며 달려들었다.
[풍화엽파강(風華葉破鋼)......!]
엄청난 속도로 뻗쳐나오는 검기(劍氣)였다.
고진이 천외비급에 수록된 파훼법을 십성 익히지 못했더라면 이미 사지중한 곳은 잘려져 나갔으리만큼 빠르고 날카로웠다.
[초반부터 살수를 쓰는군. 좋아, 그럼 나도 답례를 해야겠지!]
고진의 손에서 투명한 기운이 발출되는 것 같더니 횡(橫)으로 손을 가로젖는 시늉을 보였다.
순간, 엄청난 바람이 일더니 사마천을 향해 몰아치는 것이 아닌가.
[우웃......!]
사마천은 재빨리 천근추(千斤錘)의 수법을 사용해 그 자리에 우뚝서서 불어오는 맞바람을 이겨내려했다.
[크아아악!]
[으아아악......!!]
허나 주변에 있던 숨은 그의 수하들은 비명을 지르며 피를 토하곤 쓰러져 버렸다. 바람에 살이 베이고 목이 잘리고, 허리가 동강나고....... 이건 보통 바람이 아니었다. 바람속에 마치 검귀(劍鬼)가 들어앉아있는 듯했다.
[천풍도참파(天風刀斬破)를 견디다니....... 제법이군. 천외비급에 실린 무공을 좀더 견식하고픈 모양이지?]
고진의 장난기 섞인 말과는 달리 그의 손에서 뻗어져 나오는 새로운 느낌....... 사마천은 다급함을 느껴 몸을 돌렸다.
[천...... 극...... 파...... 멸...... 참......!!(天極破滅斬)]
마른하늘의 날벼락인가?
사마천은 자신의 두 눈에 번개가 번쩍이는 듯한 빛을 보았다.
동시, 자신의 가슴에 휑한 느낌이 들어 자신의 가슴을 천천히 내려다 보았다. 순간, 그의 눈은 불신이 가득담긴 경악의 표정으로 변해 버렸다.
일대종사인 그의 무공이 이렇게 무참하게 박살났다는 패배감과 아울러 자신의 가슴이 휑하니 뚫려 버렸다는데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의 가슴에 아이 머리통만한 구멍이 뚫려졌음에도 그의 몸에선 피한방울도 흐르지 않았다. 고통도 없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입을 달싹거려 보지만 아무런 소리도 그의 입밖으로 흘러나오지 않았다.
[천외비급에 수록된 천극파멸참이란 무공이었소. 사마천, 당신은 오랫동안 영화를 누려왔소. 허나 세상어디에도 영원불멸이라는 말은 없었소.]
사마천이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리곤 그의 머리도 아래로 떨어졌다.
그 자세는 마치 자신의 죄를 시인하는 죄수처럼 보였다.
[잘 가시오.......]
고진은 몸을 돌리더니 소리쳤다.
[모두 돌아들 가라.]
누구에게 한 말인가?
숲속에 숨은 고수들은 그 말이 곧 자신들에게 한 말임을 깨달았다.
(단 이초만에 맹주님이 격살당했다! 무시무시한 자다....... 더 이상 어물쩡거린다면 우리들의 목숨은 떨어지는 낙엽보다 못할 것이다......! 그가 인정을 베풀 때 돌아서는 것이 목숨을 보존하는 것이다!)
고진의 귓가엔 그들이 황급히 몸을 돌려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뱀을 때려잡아도 이런 기분은 들지 않을 텐데...... 살인이라는 것이 이런것인가? 정말 두 번다시 할게 못되는군.......)
구원신의 고진.......
그는 여지껏 짐승이 아닌 사람을 상대로 살생한 적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오늘....... 그는 전혀 뜻밖의 일을 해 내고야 말았던 것이었다.
살인을 한 후의 기분....... 그에게 있어 그 기분은 영원토록 잊지 못할 씁쓸한 기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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