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무협. 무림독패(武林獨覇)
- 28 - 파천록(破天錄)의 등장.
채미란은 어머니 입에서 흘러나오는 비사를 듣고서야 비로서 자신의 출생에 관한 비밀을 알게 되었다.
[나는 28년간이나 응어린 한을 갖고 살아왔지만, 너를 보니 그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지 잘 알겠구나. 운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
[그런데....... 너 혼자 왔느냐?]
[......?]
채미란은 문득 멍한 눈으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네 남편은 함께 오지 않았느냔 말이다.]
[어머니도 참.......]
채미란은 순간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사위는 뭐 하는 사람이냐?]
[그는 의원이에요.......]
[의원......?]
그녀의 눈빛은 처연하리 만큼 침울해지는 것 같았다.
[어머니....... 저는 남편을 사랑하고 있어요. 후회따윈 하지 않아요.]
[그래야지.......]
두 모녀의 정다운 모습을 지켜보던 백선과 흑선도 눈가에 눈물이 아롱거리는 것이었다.
x x x
마차 위에 두 남녀.......
누가 보아도 무척이나 정다운 모습이었다.
[용랑, 언제쯤 도착할 수 있을까요?]
[너무 서두르지 않아도 돼. 달포면 곤륜에 도착할 수 있을거야.]
[아......, 빨리 보고 싶어요.]
[허허, 당신이 그러니 나도 처제(妻弟)를 빨리 보고 싶은데......?]
누가 보아도 여유작작한 모습이었다.
그들은 악양을 벗어나 외래곡(外來谷)으로 접어 들었다.
[왠지 무서워요.......]
[산적이라도 나타날 것 같은데.......]
[용랑, 싫어요!]
[하하.......]
용천우는 말을 몰면서 곡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전혀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 같았다.
그의 정체가 무엇이기에 이토록 자신만만한 것일까?
그들이 외래곡 중앙을 지나고 있을 무렵이었다.
[크아아아악!]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불길하다!]
그는 마차를 몰고 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했다.
용천우는 마차로서는 도저히 다가갈 수 없음을 알고는 몸을 날렸다.
[초홍은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용랑, 조심하세요!]
용천우가 내려선 곳에 남아 있는 것이라곤 처참하리만큼 도륙된 시신들 뿐이었다.
[잔인하군.......]
순간, 시신들 가운데 꿈뜰거리는 자가 있었다.
그는 얼른 다가가 사건 경위를 물어 보았다.
[이보시오! 어찌된 일이오?]
[크으윽! 이..., 이걸 소..., 소림...... 장문에게....... 부탁.......]
그자는 품안에 있는 한권의 책을 필사적으로 끄집어내어 그에게 건네 주었다.
용천우는 그의 숨이 끊어진 것을 알고는 애도의 표시를 했다.
[당신들이 누구에게 이토록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당신의 마지막 유언은 기필코 지켜 드리겠소.]
그는 왼손을 살짝 치켜 들어 가볍게 손을 흔들자,< 퍼, 퍼어엉!>소리와 함께 땅이 3장(丈) 깊이로 움푹 파여지는 것이었다.
그는 수십구의 시신들을 그 구덩이로 몰아 합장 시켜주었다.
그리곤 다시 아내가 기다리고 있는 마차로 몸을 날렸다.
마차에는 초홍이 태연스런 모습으로 그를 맞이했다.
[가셨던 일은 잘 되셨어요?]
그는 거기에 있던 일을 얘기해 주었다.
[그들은 필시 이 책을 노렸을거에요.......]
초홍이 남편이 들고 있는 책을 가르키며 말했다.
[내 생각도 그럴 것 같았어. 자, 빨리 길을 서둘러야겠는걸.]
[여기에서 소림사가 더 가까울거에요. 소림사부터 들려야겠지요?]
[하하, 역시 당신은 현처요!]
두 사람은 마차를 몰아 외래곡을 벗어나고 있었다.
x x x
외래곡 중앙.
여섯명의 거한들이 모두 고개를 숙인채 한 사람의 말을 듣고 있었다.
[멍청한 놈들 같으니라구!]
[죄......, 죄송합니다. 저희들은.......]
[쓸데없는 물건만 뺏고 정작 필요한 것은 어디에 파 묻혔는지도 모르다니......!]
[.......]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내가 둥그렇게 생긴 묘를 가르키며 말했다.
[분명 저 무덤을 만든 놈이 갖고 갔을 것이다. 파천록(破天錄)이라는 책이다. 찾아라! 그 책을 찾아야만 너희들의 목이 보존 될 수 있음을 명심해라! 암흑파살천(暗黑破殺天)의 명령을 어기고 살아남은 사람이 한명도 없음을 뼛속 깊이 명심하도록 하라!]
[존명!]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여섯명의 거한들은 일제히 하늘로 솟구쳤다.
[파천록....... 모든 무공을 파훼(破毁)시킬 수 있는 비급....... 다가오는 교주님의 70년 생일선물로 이보다 더한 것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이것이 소림의 손에 들어가게 되면 그동안 공들였던 시간은 허사가 되고 만다.]
그의 중얼거림도 잠시, 재빨리 신형을 하늘로 솟구쳤다.
x x x
유하객잔.
채미란과 채예상이 탁자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아 있었다.
[벡선과 흑선은 나가 곧 떠날 수 있도록 마차를 준비 하도록 해라.]
[네.......]
두 사람이 밖으로 나가자 채미란은 어머니를 향해 말했다.
[어머니....... 정녕 본교로 돌아가지 않으시렵니까?]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돌아가지 않겠다. 암울할 기억밖에 존재하지 않은 곳으로 다시 돌아가란 말이냐?]
[.......]
그녀는 그런 어머니를 이해하는지 다시 말했다.
[그럼, 어머니....... 우리 곤륜으로 가요.]
[곤륜엘?]
[그곳에 남편이 기다리고 있어요.]
[오호라, 이제보니 제 서방이 보고 싶으니까 나와 함께 가려는 구나.]
[어머니도.......]
[호호.......]
두 사람은 나직히 웃었다.
실로 오래간만에 웃는 모녀였다.
**
객잔 앞에 두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가 세워져 있었다.
마부는 전신의 백의를 입고 있는 젊은 서생이었다.
비단 그 뿐만이 아니었다.
말고삐를 부여 잡고 있는 또 한명의 백의서생은 실로 눈이 부시리 만큼 잘생긴 미남자였다.
바로 백선과 흑선이었다.
그들은 누군가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객잔앞에 한명의 중년부인과 젊은 여인이 나란히 나오고 있었다.
채미란과 그녀의 어머니 채예상이었다.
흑선이 마차에서 내려 공손한 예를 차렸다.
[시간이 없어 사두마차(四頭馬車)를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채예상은 껄끄러운 듯이 웃었다.
[사두마차 씩이나....... 고관대작들이나 타는 그런 마차를 준비했더라면 절대로 타지 않았을거야. 그러니 전혀 가책을 느끼지 마시게.]
[감사합니다.]
[어머니, 어서 오르세요.......]
채예상이 먼저 마차에 오르고난 후, 채미란이 뒤따라 마차에 오르려는 순간이었다.
[잠깐!]
채미란은 돌연한 부름에 뒤돌아 보았다.
돌연한 소리를 친 것은 다름 아닌 하나의 늙은 거지였다.
헌데 그 모습이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었다.
[무슨 일이오?]
흑선이 나서며 말했다.
그러자 그 늙은 거지는 들고 있던 대나무 지팡이로 땅바닥을 한 번 세차게 내려 찍으며 허리를 꼿꼿하게 펴는 듯한 행동을 하였다.
[에이구......, 허리야....... 나이가 드니 몸이 고생이구먼.......]
[......?]
[어디까지 가는 줄은 모르겠지만 함께좀 가자꾸나!]
채미란은 그의 말투며 행동이 어디서 본 것이라는 생각을 좀처럼 지울 수 없었다.
[얘야, 태워다 드리자꾸나.]
채예상의 말이었다.
채미란은 할 수 없이 그 늙은 거지를 앞자리에 태웠다.
늙은 거지는 말을 몰고 있는 흑선의 바로 옆에 훌쩍 올라타서는 허리춤에 있는 호로병을 꺼내어 가볍게 흔들며 입에 대는 것이었다.
[크아아, 맛 죽이는 구만!]
순간, 채미란의 눈에 떠오르는 모습....... 3개월 전 경성에서 본 그 늙은 거지였다.
[당신은......?!]
[흐흐, 걱정말아라. 요 석달간 너를 주시해 봤지만 네가 마교의 앞잡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니까....... 그나저나 지난번에 미안해서 어쩌지? 그 녀석은 그래도 내게 백팔화미향주를 선뜻 주었었는데.......]
홍무연이 말하는 그 녀석은 바로 채미란의 남편이자 구원신의라 불리우는 고진이었다.
[흥......!]
채미란이 콧방귀를 끼며 그의 말을 흘려들었다.
[좋다! 내, 사과의 뜻에서 너희 모녀에게 아주 요긴한 소식을 가르쳐 주마.]
그는 그렇게 말하며 또 한모금의 술을 마셨다.
[부인, 부인이 찾고 있는 사람이 살인귀의라 불리우는 곡양풍이 맞소이까?]
[어떻게 그걸......?!]
[개방의 정보통이면 뭐든지 다 알수가 있소이다.]
[그, 그는 지금 어디에......?]
[애석한 노릇이지만......, 그는 이미 3년전에 세상을 떠났소.]
[아아......!]
[우리 제자들이 그의 묘를 찾았는데....... 경성에서 오백리가량 떨어진 형가촌이라는 곳이오. 그의 묘를 세워준 사람이< 고진>이라고 했소. 아마 그의 제자가 아닌가 싶소.]
[고진이라 했어요?]
채미란은 어느새 경어가 습관처럼 되어 버렸는가? 그녀의 입에서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말이었다.
[그렇다네.]
채예상은 딸아이를 보며 물었다.
[아는 사람이냐?]
그녀의 음성은 무척이나 들떠있었다.
[남편 이름과 같아요.......]
[.......]
홍무연은 느긋한 태도로 털컹거리며 떠나가는 마차에 몸을 기대었다.
(쳇, 유호청 그 놈이 내게 미리 언질을 주지 않았더라면 큰 실수를 할 뻔했잖아. 이 계집년이 구원신의의 마누라라고 왜 진작 알려 주지 않았지? 빌어먹을 놈! 하여튼 구원신의 그 녀석의 관상을 보니 여난(女難)에 엄청 시달릴 것 같더구만.......)
사실, 홍무연은 석달전 개성에서 마주친 채미란을 보고 마교의 앞잡이라 단정짓고 추적했었다. 조금이라도 허튼짓을 하면 당장에 요절을 내려고 벼루고 별였다.
헌데 이틀 전, 유호청으로부터 하나의 전서(傳書)가 도착했었다.
구원신의로부터 자신의 딸을 구했다는 내용과 구원신의의 부인인 채미란을 찾아 곤륜까지 와 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는 그 편지를 받는 순간 깜짝 놀랐다.
채미란의 남편이라고 한 사내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는 구원신의에 관해서 몇가지 조사를 했었다.
헌데 개방의 거지들도 구원신의로부터 치료를 받은 자가 수두룩 했었다.
보통의 의원들은 거지들에게 의술을 배풀지 않는다. 그런데 구원신의는 거지들에게조차 의술을 배풀었던 것이었다.
그는 개방에서도 서열이 가장 높았다. 방주(幇主)인 주천방의 사숙이라는 것도 무시못하지만 그가 개방 걸인들에게는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때문에 제자들이 구원신의에게 치료를 받았다는 것은 곧 자식이 은혜를 입은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홍무연은 구원신의라는 인물에 대해 크게 감격했고, 그의 아내인 채미란도 악인이 아닐 것이라고 판단되어 이렇듯 모습을 나타낸 것이었다.
그는 푸른 창공의 흰구름이 무척이나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 계속 |
| 리플률 :   0/3957 (코멘트수/조회수) - 0%
 |
   |
| 사랑해~<font color=red>♡</font>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