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무협. 무림독패(武林獨覇)
- 39 - 화산에서의 해후(邂逅)
그들이 서안(西安)에 도착한 것은 6일이 흐른 후였다.
[청언니, 고향에 온 소감이 어때요?]
강유정이 청소옥을 보며 물었다.
[.......]
그녀는 대답을 하지 않은채 멀리 솟아오른 산봉우리 하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곳은 분명 자신이 자라온 화산파가 자리하고 있는 화산이 틀림없을 것이다.
[언니!]
[응? 미안....... 1년만에 온 고향인데도 너무도 달라 보이는 것 같아서.......]
여행으로 인해 피로하기 때문인가? 그녀의 얼굴은 몹시 무거워 보였다.
그날 밤.......
아직 20여일의 여유가 있던 채미란이 산통이 시작되었다.
의원인 그도 채미란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고는 조마조마해하며 안절부절함을 감추지 못했다.
[아이가 태어나려면 아직 20일은 더 있어야 하는데.......]
구원신의라 불리우는 그라할지라도 신이 점지해준 아이의 출생일을 정확히 맞출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아아......아악!!]
채미란의 고통어린 비명이 들려올때마다 고진의 발걸음은 더욱더 초조해지고 있었다.
삼각(三刻)이 지났을 즈음인가?
[응애...... 응애......!!]
우렁차고 당찬 아이의 음성이 울려터졌다.
소홍과 빙모(聘母)가 문을 열며 얼굴을 드러냈다.
[축하해요, 고추에요!]
[축하하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 내가 했나? 미란이가 했지.......]
그는 성큼 방안으로 들어가 채미란과 비단보자기에 싸여진 자신의 아들을 바라보았다.
[고맙소.......]
[상공.......]
채미란도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앙증맞은 손을 휘저으며 울고있는 아이를 보며 웃음을 지었다.
[정말 귀엽다.......]
언제 들어왔는지 유청화와 나머지 여인들이 들어와 갓태어난 어린아이를 보며 마치 자신의 아이인양 즐거워했다.
특히 청소옥의 관심은 대단했다.
앙증맞은 아이의 손을 흔들어보기도 하고 볼을 조심스럽게 건드려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게 입가엔 엷은 미소가 번져가고 있었다.
고진의 마음은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혼자 뜰에 나와서는 유성이 길게 늘어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어두운 그림자를 애써 감추는 듯 했다.
[진아.......]
용천우가 소리없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외숙부.......]
[오늘따라 밤 공기가 무척 차구나.......]
[아직 초봄의 날씨라서 그럴겁니다.]
[녀석....... 애써 숨길 필요가 뭐 있느냐? 솔직히 나는 너를 청해도로 데려가 돌아가신 아버님의 유지대로 너를 최고의 무인으로 키우고 싶었다. 허나 너는 이미 파천록, 아니 천외비급을 완전하게 익힌 천외무승이 되지 않았느냐?]
[천외무승이니, 구원신의니 하는 호칭은 제게 별 의미가 없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고통스러워 하는 것을 보고 있을 수만은 없을 뿐입니다.]
[그래, 네 의지와는 상관없이 지어진 호칭이겠지....... 너는 저자(著者)거리로 나가 봤느냐? 그들에게 구원신의에 대한 호칭은 단순히 너를 위해 지어진 이름이 아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구원신의>라는 이름은 절대적인 존재라는 것을 너는 아느냐? 너는 그것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될 것이야.......]
[.......]
[소림의 대명대사가 이런 말을 네게 전해 주라고 하더군.......]
그는 대명대사의 말을 그대로 읊조리듯이 전해 주었다.
<강함은 부러지기 쉬운 법이라 부드러움의 이치를 깨달을 때 진정한 강함의 이치를 깨닫게 될 것이다.>
고진은 그 말을 새겨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참, 셋째 질부의 고향이 이곳이지....... 함께 다녀오너라.]
[......?]
[나도 함께 가고 싶다만, 나라도 여기서 질부들을 지켜줘야 하지 않겠느냐? 설마 안가 볼 생각은 아니겠지?]
[아닙니다. 소옥도 저의 아내입니다. 제가 어찌 인사를 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럼, 당연히 그래야지.]
밤하늘에 또 하나의 유성이 길게 늘어지며 서산으로 사라져 가는 3월 중순의 밤이었다.
x x x
화산파.
무척이나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고진과 청소옥, 그리고 홍무연이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그때였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타났는지 모를 7명의 청춘남녀들.......
[누구냐! 정체를 밝히지 못하겠느냐?!]
그들은 일시에 검을 발출하며 소리쳤다.
홍무연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말했다.
[요즘 젊은것들은 예의가 너무 없어. 화산파도 맛갈데가 다 된 모양이야!]
[홍노개(洪老 )!]
청소옥이 날카롭게 외쳤다.
[거참, 네 놈은 아무래도 마누라를 잘 못 얻은 것 같애....... 쯧쯧.......]
[아니, 저 년놈들이 우리 화산오룡삼봉(華山五龍三鳳)을 허수아비로 아나? 쓴 맛을 봐야 대답을 하겠느냐?]
오룡삼봉중 다섯 번째인 홍여주(洪麗朱)가 일갈했다.
청소옥이 반갑게 대답할 수도 있었는데, 고진이 먼저 공손하게 읍례를 올리며 대답했다. 험악한 분위기탓에 소옥이 마음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본인은 고진이라는 사람이오. 귀파의 장문인을 뵙고 싶어 이렇게 불쑥 찾아왔소이다.]
그러자, 오룡삼봉중 셋째인 황운보(黃雲寶)가 대답했다.
[지금, 사부님은 폐관연공(閉關練功)중이시라 외부인의 방문은 받지 않고 있으니 돌아들 가시오!]
그때였다.
[대사저(大師姐)......? 대사저 아닌가요?]
오룡삼봉중 마지막 여덟 번째인 곽호령(郭湖嶺)이 청소옥을 보며 외쳤다.
그의 말에 다른 6명의 남녀들도 그녀의 얼굴을 보며 매우 놀라와 하고 있었다.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1년만에 집으로 돌아온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녀를 호위하던 총관, 도문현(道雯鉉)이 목이 잘린 시체로 돌아와 그녀의 안위를 크게 걱정하고 있던 처지였다.
순간, 그들 중 두명의 남녀가 안색이 파리하게 변해버렸다.
오룡삼봉중 셋째인 황운보와 다섯 번째인 홍여주....... 바로 그들만이 청소옥을 보면서 불안에 떨고 있었다.
[모두들 건강하게 지내고 있었구나.......]
[사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요? 그동안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었길래 연락조차 주지 않은거죠?]
오룡삼봉의 둘째인 공손대풍(公孫大豊)이 쉴틈도 주지 않고 질문을 했다.
청소옥은 고진을 한 번 올려다보며 평온한 미소를 지었다.
순간, 오룡이봉들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어리둥절했다.
과거의 그녀의 모습이라곤 찾아 볼수가 없었다. 말괄스럽던 그녀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정숙한 여인으로 변모하여 돌아온 그녀의 모습에 모두들 어이가 없는 듯이 바라보았다.
[사저, 그 분은 뉘시오?]
황운보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물었다.
[나와 혼인지약(婚姻之約)을 맺은 분이야.......]
[혼인지약......??]
7명의 화산파 제자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강하게 반문했다.
[허허, 정말 요즘 것들은 어른을 모실줄 모른다니까! 청운비가 너희들을 그렇게 가르치더냐?]
홍무연의 말에 공손대풍은 손을 내저으며 다급히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사저 어서 오르시오!]
황운보와 홍연주, 그들 단 2명만을 제외하고는 그들은 즐겁게 그들을 맞이하며 계단을 올라갔다.
x x x
[빌어먹을......!]
달빛마저도 비추지 않는 음침한 밀실에서 들려오는 사내의 목소리에 이어 여인의 음성이 가늘게 떨리며 이어졌다.
[사형, 어떻게 할거에요? 사저가 돌아온 이상 우리의 음모가 들통날지도 모른다구요!]
[시끄러워! 사저의 평소 실력으로 보아 함께온 그 녀석도 만만한 존재는 아닐거야.......]
[그래요, 게다가 늙은거지까지 만만한 존재가 아니에요!]
[젠장, 다 된 밥에 코를 빠트려도 유분수지.......]
[사저나, 다른 형제들이 알면 우린 뼈도 못 추려요!]
[설여진(雪如眞), 그 계집년을 이용해야겠다.]
[여진이를......?]
[그래, 그년은 사저와 앙숙이지....... 잘만 이용하면 사저와 그 놈들을 쥐도새도 모르게 죽여버릴 수 있어! 내가 시킨대로 술을 건네 주었겠지?]
[방금 들고 나간 것을 봤어요.......]
[잘했어! 흐흐흐흐......!]
음침한 밀실에서 들려오는 대화는 흔들리는 촛불과 함께 파묻혀 버렸다.
그러나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말이 생겨났듯이 그들의 비밀스러운 대화를 우연찮게 듣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x x x
홍무연은 연신 술과 음식이 나오자 기분이 좋아 입이 다물어 질줄을 몰랐다. 그럼에도 그의 행동은 전혀 추잡스럽지 않았다.
청소옥은 형제들이 권하는 술을 몇잔만 마시고 더 이상은 거절을 했다.
[아니, 사저! 우리들의 성의를 무시하는 거요? 왜 술잔을 받지 않는거요?]
이미 곤두레가 된 공손대풍이 외쳤다.
그도 그럴것이 예전같았으면 그녀가 오히려 더 먹으라고 떠들어 댔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공손대풍의 말에 청소옥은 부끄러운 듯 수줍은 얼굴로 자그맣게 대답했다.
[나......, 임신중이란 말이야.......]
[네? 아이를 가졌단 말입니까? 하하하하!]
[하하하! 더더욱 축하해야 될 일이군요! 하하하하!!]
형제들은 모두 자기일인양 기뻐하며 술잔을 올리며 자축하고 서로 축배를 올리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고진과 홍무연은 그들 형제중 2명이 보이지 않음을 이상하게 여기고 있었다.
<영감님, 술에 수면약이 태워져 있습니다. 너무 많이 마시지 마세요.>
고진의 입은 조금도 달싹거리지 않았음에도 홍무연의 귀에는 그의 음성이 또렷하게 전해져 오는 것이었다.
바로 전음입밀(轉音入謐)의 수법이었다.
(정말 놀라운 녀석이야....... 제아무리 옥령환을 갖고 있다해도 보통 수련이 아니면 불가능한 수법을.......)
홍무연은 고진의 재주에 감탄하면서 대답을 했다.
<흥, 이깟 수면약으로 날 재울려면 어림도 없지....... 근데 누가......?>
<아무래도 보이지 않는 2명이 좀 수상합니다. 뭔가가 있는 것 같아요.>
<나도 그 생각을 갖고 있었다. 좀 더 두고 보면 알겠지.......>
잠시후, 황운보와 홍여주가 함께 들어와 술잔을 들고 그들과 술을 나눠 마시며 어울리는 것이었다.
[사저, 못본 사이에 더더욱 미인이 되셨습니다! 하하하!!]
[삼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내가 보기에도 그렇다니까! 하하하하!!]
공손대풍은 거의 만취가 되었음에도 전혀 추잡스럽게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사형께선 무림인이시오?]
황운보의 돌연한 질문에 다른 형제들조차도 시선이 집중되었다.
(이들이 나를 시험하려 드는구나. 그렇다면 우선은 이들의 기를 꺾을 필요가 있겠지.......)
고진은 싱긋 웃으며 대답을 했다.
[그렇소.......]
[통성대명(通聲大名)이 어떻게 되시오?]
고진의 입에선< 천외무승>이 터져나오려고 했으나, 청소옥이 먼저 대답해 버리는 바람에 그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이분은 천하제일신의라 불리고 있어.]
[천하제일신의......? 설마 구원신의......??]
방안의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며 믿을 수가 없다는 듯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한 형제들의 표정을 보면서 흐뭇하게 미소짓고 있는 청소옥이었다. 자신의 남편이 자랑스럽게 느끼지 않을 아내가 어디 있을까만은.......
[훗, 구원신의가 무공을 한다는 소리는 금시초문인데.......]
황운보는 이미 그를 걸고 넘어지기로 작정을 했는지 사사건건 시비조로 말을 띄우고 있었다.
고진이 피식 그를 조롱하듯 비웃으며 대답을 했다.
[그렇소, 본인은 강호에서 구원신의라 불리우는 의원입니다. 그러나 본인이 검을 들어 살인을 한적이 없으니 유명하지 않을 수 밖에요.......]
그 말을 역(逆)으로 들으면 화산오룡삼봉은 살인을 많이해서 유명해졌다는 뜻이 아닌가?
이 말을 곧장 알아들은 황운보는 탁자를< 탁!>치며 벌떡 일어났다.
[정말, 사저의 부군이라 봐줄려고 했지만 정말 참을 수가 없군! 어떻소? 나와 검술 대결을 해 보지 않겠소?]
[황삼제!]
청소옥이 날카롭게 노려보며 소리쳤다.
[사저는 빠져 주시오! 우리 화산오룡삼봉을 모욕하는 것을 나더러 참으란 말이오? 나는 죽어도 그리는 못하겠소!]
그는 검을 빼어 들었다.
[호령아, 네 검을 저 자에게 주어라.]
곽호령은 사형의 명령임에도 선뜻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사형.......]
[어서!]
곽호령은 하는 수 없이 고진에게 검을 공손하게 내밀자, 고진은 검을 받아 쥐었다.
두 사람은 곧이어 말없이 밖으로 나갔다.
[승부를 논하는 검술에 진검보다는 목검이 낫지 않겠소?]
고진이 그렇게 말하면서 연습용으로 쓰는 목검으로 바꿔들었다.
[훗......, 검술에 있어 승부는 곧 죽음과 직결된다. 목검을 들던 진검을 들던 그것은 그대의 자유지만 설사 내 손에 목숨을 잃더라도 원망은 마시오!]
[잘 알겠소이다!]
고진은 목검을 가볍게 내렸다.
달빛만이 유일한 빛인 듯 그들을 내리쬐고 있는 가운데, 황운보의 검이 번쩍 빛을 발하며 움직였다.
<턱!>
진검과 목검이 부딪쳤다.
다른 형제들은 목검이 분명 잘려져 나갔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헌데 대치된 상황은 어떠한가? 목검은 무사할 뿐만 아니라, 선제공격을 가한 황운보가 도리어 뒤로 세발짝이나 물러서고 있었으니 그들이 어찌 놀라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내가 방금 쓴 것은 무극파훼법이란 것이오.]
(무극파훼법......? 어디서 들어본 적이 있는 검법이야......!)
공손대풍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뭔가 골똘히 생각에 잠기고 있었다.
그러고있는 사이에도 황운보의 공격은 계속되었다.
[칠단초절검(七斷超切劍)......!!]
[감히, 금지된 살검을 펼치다니......!]
청소옥은 황운보가 펼치는 검법이 살검(殺劍)임을 알고는 대경실색하며 놀라했지만 이미 시전되고 난 후였다.
<티이잉!>
금속성의 소리가 청아하게 울려퍼졌다.
고진의 움직임은 전혀 없는 듯이 그 자리에 그대로 존재하고 있는 반면, 공격을 가한 황운보는 부러진 검을 쥔채 일장이나 나가떨어져 버렸다.
[무륜파훼법이라는 검법이오.......]
고진은 가볍게 검을 낮추며 짤막하게 입을 열었다.
황운보는 자신조차도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검이 맞부딪치는 순간, 자신의 진기가 역류하면서 튕겨저 나가고 말았으니 말이다.
[천외비급......! 사형이 펼친 무공이 혹시 천외비급이 아니오?]
공손대풍의 돌연한 외침이었다. 그의 음성은 매우 떨리고 있었다. 아마 흥분됨과 놀라움 때문일 것이다.
고진은 그를 한 번 바라보며 웃음을 지은채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정말 놀라운 검법이오......!]
고진은 청소옥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이었다.
[받아랏!]
쓰러져 있던 황운보가 뒤에서 암수를 펼친 것이었다.
날카롭게 날아드는 물체는 짧은 비도(飛刀)였다.
[연환18로(軟幻十八路) 풍운결(風雲訣)!]
청소옥이 재빨리 설여진의 검을 뽑아들어 일순 그 비도들을 쳐냈다.
놀란 것은 다분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공손대풍을 비롯한 모든 형제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황 삼제......?!]
[빌어먹을......!]
그는 등을 보이며 재빨리 허공으로 사라졌다.
그가 사라지자 형제들의 시선은 홍여주에게로 집중되었다.
[아니, 나를 왜 그렇게들 보는거야?]
그러나 도둑이 제발 저린다고 했던가? 그녀는 뒷걸음질치며 금방이라도 달아날 듯한 기세였다.
[흥, 네년이 술에다 약을 탓느냐?]
홍무연의 돌연한 물음이었다.
또 한 번의 충격이었다.
형제들은 배신감을 느끼며 홍여주를 노려보았다.
[도대체 무,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거야?]
[사저, 이제그만 실토를 하시지!]
[......?]
홍여주는 정곡을 찔러오는 설여진을 바라보며 어리둥절해 하는 표정이었다.
[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거야? 술에 취해서 전부 어떻게 된거 아냐?]
[삼사형하고 사저는 나를 이용해 대사저와 손님들을 죽이려 했잖아!]
[......?!]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말이었다.
역시 그들의 대화를 엿들은 인물은 바로 설여진 바로 그녀였던 것이다.
[이......!]
그녀도 더 이상은 안되겠다 싶어 달아나려고 했으나 어느새 그녀의 몸은 뻗뻗하게
굳어버렸다. 공손대풍이 어느새 그녀의 몸에다 점혈을 가해버린 것이었다.
[흥, 너희들이 이런다고 내가 고분고분 할 줄 알아?]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구나!]
공손대풍이 홍여주를 향해 손찌검을 하려는 순간이었다.
[잠시 손을 멈추시오.......]
고진이 공손대풍의 내려치려는 팔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나에게 맡겨 주시겠소?]
[.......]
공손대풍은 분노를 간신히 참으며 물러섰다.
[영감님, 혹시 미혼대법(迷魂大法)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미혼대법? 그거 사술(邪術)이면서도 도가(道家)에서는 가장 익히기 힘든 술법이라고 들었는데....... 설마 네 녀석이......?]
[변방에 있을 때 조금 익혔죠.]
그는 홍여주를 보며 말을 이었다.
[홍 소저, 나의 미혼대법은 완전치 못해 시전하다 잘못해 당신을 죽일수도 있소. 형제들의 물음에 순순히 대답하지 않으시겠소?]
[흥! 내가 네놈들 수작에 넘어 갈 것 같아? 어림없는 개소리마라!]
[생긴건 멀쩡한게 말은 홍등가의 계집년들보다 더 싸가지가 없구나!]
홍무연이 일갈하며< 철썩!>소리가 울릴정도로 그녀의 볼기짝을 거세게 내리쳤다.
[아악! 이 영감탱이가 어딜 때리는거야!]
순간이었다.
고진이 홍여주와 눈빛이 마주친 것이.......
[이......, 이건.......]
그녀의 눈빛이 흔들리는 듯 하더니 이내 스르르 눈을 감아 버렸다.
주위의 사람들도 숨을 죽이며 그의 술수를 지켜보고 있었다.
(도대체 저 사람의 능력은 어디까지란 말인가? 의술과 무공은 그렇다치더라도 이제는 도가의 금지된 술법까지.......)
청소옥도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숨을 죽였다.
[너의 이름은 무엇이냐?]
[홍여진.......]
고진은 자신의 물음에 순순히 입을 여는 그녀를 보고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혼대법은 성공한 것이었다.
[네가 진정 술에 약을 탔느냐?]
공손대풍이 돌연 나직히 물어왔다.
그러자 홍여진은 여전히 눈을 감은체 입술만 방긋거리며 대답했다.
[대사저가 우리들의 음모를 알아낼까 두려워서 삼사형이 시킨대로 했어......]
[우리들의 음모라니?]
청소옥의 물음이었다.
[무궁도의 비밀.......]
[뭣, 무궁도? 그건 아버님이 갖고 계실텐데...... 어떻게 네가 그걸 알지?]
[사부님이 삼사형에게 가르쳐 주었어.......]
[절대 그럴리가 없어! 아버님은 지금 어디에 계셔?]
청소옥은 공손대풍에게 야단치듯 소리지르며 물었다.
그런데, 대답은 공손대풍이 아니라 홍여주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뒷산 동굴.......]
[뒷산 동굴? 거긴 죄수를 수감하는 곳이잖아!]
[설마......!]
형제들도 아연해하며 서로의 얼굴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간사한 계집년 같으니라구!]
홍무연의 돌연한 외침과 함께 홍여주의 머리에서 핏물이 새어나고 있었다.
(놀라운 음공(音功)이다! 고함소리 한 번으로 사람의 목숨을 끊어버리다니....!!)
공손대풍을 비롯한 형제들이 홍무연을 보며 경이로운 눈빛을 지으며 바라보고 있는 사이, 청소옥은 어느새 뒷산 동굴쪽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우리들도 가야하는거 아니에요?]
설여진의 말에 정신을 차리며 청소옥의 뒤를 쫓았다.
홍무연과 고진만이 핏덩이가 된 홍여주의 시신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무궁도가 화산에 있었다니.......]
홍무연이 중얼거리자 고진이 되묻는다.
[무궁도는 또 무엇입니까?]
[무궁도는 옥령환과 더불어 무림삼대기보중 한가지야. 그것을 얻으면 천하제일무신이 된다고 할 정도란 말이다.]
[그런데 그 무궁도는 어디에 있는건지 알고 계십니까?]
[응? 그......, 그건....... 끄응.......]
홍무연의 불같은 성질탓에 홍여주의 목숨을 끊어버려 더 이상의 정보를 얻기란 불가능했기 때문에 앓는소리를 내며 머리를 긁적였다.
[우리도 소옥의 뒤를 따라 가야지 않겠습니까?]
[가야지.......]
홍무연은 쥐죽은 듯 고진의 뒤를 따랐다.
x x x
뒷산 동굴.
음침한 것이 달빛을 받아 그런지 더더욱 침울해 보였다.
[헉...... 헉.......]
청소옥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동굴입구에 서서 동굴안을 바라보았다.
[누구냐?!]
순간, 동굴안에서 들려오는 가래끓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아버님!]
[소옥......, 소옥이냐!]
[아버님!]
청소옥은 한치앞도 볼 수 없는 컴컴한 동굴안으로 다짜고짜 뛰어 들어갔다.
[아버님!]
청소옥은 동굴 깊숙한 곳에 전신을 쇠사슬로 묶인체 산발로 앉아 있는 그림자를 발견하게 되었다. 가슴 깊은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감과 슬픔이 순식간에 복받쳤는지 그녀는 연신 눈물을 그치질 못했다.
[흐흑......, 아버님......!]
그녀는 털썩 자리에 주저앉으며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고, 곧이어 뒤따라온 사형제들에 의해 동굴안은 점점 밝아지기 시작했다.
[헉!]
사형제들은 모두 헛바람을 들이키며 숨을 멈추고야 말았다.
자신들의 눈에 비친 인물이 진정 자신들의 스승이 맞는지조차 의문스러울 정도로 앙상한 몰골과 들끓는 벌레들 틈바구니에 의연스레 앉아있질 않은가!
[대풍아, 운보......! 그녀석은......!!]
공손대풍이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털썩 무릎을 꿇으며 대답했다.
[사부님, 제자를 죽여 주십시오! 제자가 못나 사부님을...... 흐흑!]
공손대풍이 흐느끼며< 쿵! 쿵!>소리가 날정도로 머리를 조아렸다.
[그만하거라! 운보, 그녀석은 어떻게 되었느냐! 그 녀석은?!]
[달아 났습니다.]
[흐흠....... 소옥아.......]
청운비의 눈에 물기가 아른거리며 딸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떠오르는 것은 황운보에게 당한 딸의 치욕이었으리라.......
[이 놈아, 그깟 애송이를 감당못해 이 꼬라지란 말이냐?]
청운비는 돌연한 음성에 고개를 돌려보니 늙은거지 하나와 청년 하나가 동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누구냐?]
[이 놈아, 그새 이 어르신의 목소릴 까먹었단 말이냐?]
청운비의 표정은 금새 환하게 변하는 것 같았다.
[홍사숙......? 정말 홍사숙이오?]
[이 놈이 컴컴한 동굴속에서 살더니 이제 사람보는 눈까지 어둡구나!]
[처음 뵙겠습니다. 빙장(聘丈)어른.]
[......!?]
청운비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방금......, 나를 무엇이라 불렀는가?]
[빙장어른이라 불렀습니다. 소인은 고진이라 하옵니다.]
[빙장......? 소옥아.......]
청운비의 놀란 얼굴이 앙상한 몰골과 함께 어우려저 더욱 흉칙하게 보였으나, 청소옥은 눈물을 머금은체 대답을 했다.
[아버님, 제 남편이에요.......]
[그럼......, 넌 그간 어디에 있었느냐?]
[곤륜에 있었어요.]
[뭣! 곤륜에......? 크크......, 크하하하하! 크크크크......!!]
돌연 청운비는 파안대소를 터트리며 호탕하게 웃어젖혔다.
홍무연이 그의 몸에 두르고 있던 쇠사슬을 끊으려 하자, 청운비가 말렸다.
[홍사숙, 이 쇠사슬은 연무철(煉懋鐵)로 만든것이라 아무나 끊을 수 없소. 게다가 이 쇠사슬이 나의 요혈(要穴)에 박혀 있어 함부로 할 수가 없소이다.]
[훗......, 이 놈아! 내가 안되면 네 놈 사위가 있지 않느냐!]
[훗......! 홍사숙도 이젠 늙었구려. 저런 애송이한테 의지를 하다니.......]
[쯔쯧....... 얘야, 네 서방이 어떤 인물인지 네 애비에게 말 좀 해주려무나.]
홍무연은 혀를 차며 청소옥을 바라보며 말을 내 뱉었다.
[아버님, 그이는 강호에서 구원신의라 불리우고 있어요.......]
[구원신의......? 천하제일신의라는......?]
[네.......]
[빙장어른......, 제가 한 번 해 보겠습니다.]
[.......]
청운비는 말을 하지 않았다.
고진이 다가가 쇠사슬을 움켜 쥐었다.
제법 무게가 나가는 무거운 쇠사슬이었음에도 종잇장 구기듯 간단하게 끊어 비리는 것이 아닌가!
[연무철을 이처럼 간단히 끊어버리다니.......]
청운비 조차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빙장어른, 약간의 통증이 올것입니다.]
그는 그리 말하고 그의 요혈에 박힌 쇠사슬들을 빼내었다.
[크으윽!]
청운비는 고통을 참기위해 청소옥의 손을 꽉 움켜 쥐었다.
그는 그동안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도 쇄잔했기 때문에 고통을 참지 못하고 혼절해 버리고 말았다.
그가 다시 눈을 뜬 것은 따뜻한 방안이었다.
곁에는 사랑스러운 딸이 자신을 간호해 주고 있는 것이 보였다.
[소옥아.......]
[아버님.......]
청소옥은 또다시 눈물을 보이며 울먹거리려 했다.
[난 괜찮다.......]
그는 딸의 손을 가볍게 부여잡으며 말을 건냈다.
[아버님......, 이젠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음.......]
청운비는 다시 눈을 감으며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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