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무협. 무림독패(武林獨覇)
- 33 - 위험지대(危險地帶)
채미란 일행은 경성에서 하룻밤을 잔 뒤, 몇가지 여행에 필요한 물건과 건량(乾糧)을 산 뒤 곤륜으로 가는 길에 올랐다.
늙은거지 홍무연도 여전히 그들과 함께 길을 가고 있었다.
채미란의 아랫배.......
임신 6개월째 접어들고 있는 무거운 몸이었다.
채예상과 백선이 곁에서 그녀를 돌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나날이 즐거웠다.
경성을 떠난 지 보름이 되던 날.
홍무연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객잔에서 음식을 시켜 먹고 있었다.
그런데, 채미란은 음식이 나오기가 무섭게 먹어 치우는 것이었다.
종업원들도 그런 그녀를 보며 몹시 놀라하는 눈치였다.
채미란이 잠시 주변의 눈치를 살피니 모두 멍청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 보고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슬그머니 음식에서 손을 뗐다.
[얘야, 왜 그만 먹니? 모름지기 아이를 가졌을땐 몸이 건강해야 한단다. 남들보다 많이 먹는다고 흉보이는게 아니란 말이다.]
채예상의 말에 그녀는 정색을 하며 말했다.
[제가 음식 먹는게 그렇게 흉해 보였나요? 그렇게 보였어?]
그녀는 백선에게 무척 진지하게 물었다.
백선은 그저 웃고 있을뿐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면 안되는데.......]
그녀의 중얼거림을 들은 흑선과 백선이 서로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마 네 서방이 네 모습을 보고 정 떨어질까봐 그러니?]
[아하.......]
그녀는 땅이 꺼지는 한숨을 내 쉬며 말했다.
[요즘들어 왜 그렇게 먹고 싶은게 많은지....... 아......, 정말 이러다가 정말 그이한테 미움 당하면 어쩌죠?]
백선과 흑선이 그녀의 말에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지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핫! 푸......훗!]
하지만 그들은 억지로 참으려고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종종 튀어나고 있었다.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말이었다.
요금미녀라 불리우던 그녀가, 살인을 함에 전혀 망설임도 없고 정이라곤 눈꼽만치도 찾아 볼 수 없었던 그녀가 한낯 남편에게 미움을 받을까봐 음식을 먹지 않겠다니....... 정말 세상의 이야기꾼들이 들으면 아마 사흘밤낮으로 배를 잡고 웃을 일이었다.
[얘야, 네 남편이 의원인데 임산부가 음식을 많이 먹는다고 뭐라고 하겠니? 만약 사위가 그렇게 말한다면 내가 혼을 내주마!]
[안돼요! 그이가 어머니의 일장을 견디지 못하고 죽으면 난 어떻해요?!]
[뭐라구? 오호호호.......]
채예상과 백선은 아무런 거리낌없이 웃었다.
채미란은 자신이 그렇게 말하고서도 이상한 듯이 어깨를 들썩이며 미소를 지었다.
x x x
곤륜산에서 백리 떨어진 백리정.
황금사두마차가 멈추어 섰다.
[눈이에요.......]
한 여인이 그렇게 외치며 마차에서 내렸다.
[눈 처음보니?]
앞서 내린 여인을 투박주듯이 말하는 또 한명의 여인이 내렸다.
마부는 아무런 동요도 없이 정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황매, 그렇게 좋아?]
[상공도 나오세요. 보세요! 얼마나 아름다운지.......]
[좋긴 뭐가 좋아? 춥기만 춥지.......]
청소옥은 그렇게 투덜거리며 강유정의 말에 핀잔을 주었다.
그러자 강유정은 아미를 잠깐 찡그리며 그녀의 말을 무시했다.
[후훗....... 황매. 나는 그대들을 지켜보는 것이 더 좋아. 눈 위에서 춤을 추는 선녀들 같거든.......]
고진은 마차 밖으로 나오며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머, 그래요? 청언니, 우리 춤출까요?]
[얘가 미쳤나? 됐어.]
청소옥은 그녀의 말을 딱 잘라 거절했다.
[혹시, 춤 출줄 모르는거 아니에요?]
[뭐? 황매 나를 무시하는거야?]
강유정이 그녀의 말에 뭐라고 반박하려는 순간이었다.
<슈우우웅!>
하나의 화살이 날아와 마차에 꽂히는 것이 아닌가!
말들이 깜짝 놀라며 길길이 날뛰는 것을 주노가 고삐를 잡아당기며 진정시키고 있었다.
순간, 공중에서 7명의 거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쿠하하하! 이거 정말 몇 년만에 보는 계집들이로군!]
[대형, 계집들이 미모가 가히 선녀들 뺨치게 생겼습니다요!]
[크하하! 두 계집 모두 나의 시녀로 만들겠다! 쿠하하하!]
[크하하하하!!]
7명의 거한들의 웃음소리에 실린 무게가 실로 엄청났다.
주위의 나무들이 파르르 떨렸고 말들도 놀라 마구 달려가는 것이었다.
[황매, 나의 춤이 보고 싶댔지? 나의 춤이 어떤건지 보여주겠어!]
그녀는 검을 빼어들더니 화산검법을 펼치는 것이었다.
[얘들아, 계집아이는 살살 다루고 저 멀대같이 생긴 놈부터 없애라!]
7명의 거한들의 무공은 실로 대단했다.
청소옥의 무공이 비록 내력이 낮고 연륜이 낮다고 하지만 그래도 화산파의 수제자가 아니던가. 헌데 그녀의 검세가 그들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상공, 청언니가 불리하겠어요!]
[황매는 청매의 춤에서 무얼 보았지?]
[현란하고 멋은 있지만 어딘가 부족해 보였어요.]
[맞아. 초식은 완벽하지만 내력을 전혀 쓰지 못하고 있어.]
[아......!]
순간, 네명의 거한이 고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고진은 옆에 있던 매화나무 가지를 끊어 들었다.
[감히 우리 북해칠호법(北海七護法)에게 고작 나뭇가지로 덤비는 놈이라니!]
[내공이 높으면 나뭇가지로도 능히 검처럼 살을 베고 자를 수 있다네!]
고진은 파천록에 기록된 무극파훼법(無極破毁法)을 썼다.
방어만을 목적으로 하는 검법들로만 이루어진 책이라 생각하여 익힌 천하에 둘도 없는 파훼검법(破毁劍法)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러한 것을 모르는 고진이었다.
단지 상대편의 검을 살짝 건드렸다고 느꼈을 뿐인데 상대편은 모두 서로 엉겨붙어 버리고 말았다.
[천외검법(天外劍法)......?!]
네명의 거한들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천외검법? 내가 펼친 것에 그런 멋진 이름이 있었군.]
다른 3명의 거한들도 동료가 단 일초에 쓰러지자 청소옥을 버려두고 일제히 고진에게로 달려들었다.
이미 지칠대로 지친 청소옥에겐 무척이나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진정 놀라운 내공의 소유자들이었어.)
고진은 문득 생각나는 두 번째 검식 무륜파훼법(無輪破毁法)을 펼쳤다.
[우아앗!]
3명의 거한들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저절로 꼬끄라지고 말았다.
검법을 펼친 고진으로서도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실상 모르고 있었다. 자신의 몸에 흐르는 엄청난 내공, 패도무겁륜과 수라혈공을 십이성 연마한 그가 아니던가. 그의 수족에< 흡공철환(吸功鐵環)>이 붙어 있음에도 그의 내공은 상상을 불허할 정도였다.
특히 패도무겁륜의 내공은 검법을 펼칠 때 그 진가가 발휘되는 것이었으니 그가 무심결에 펼친 절세의 파훼검법이 수록된 파천록과 만났으니.......
7명의 거한들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그대들의 무공또한 절륜하고 초절한 것 같은데....... 왜 이런 곳에서 비적질이오?]
고진의 물음에 그들은 순간 7명의 거한들은 입을 다물어 버렸다.
[훗....... 우리들은 북해칠호법이라 불리우는 80년 이상을 살아온 사람이다. 북해신궁(北海神宮)의 내분만 아니었다면 우린.......]
[삼제(三弟)! 도대체 무슨 헛소릴 하는거냐?!]
[이형(二兄), 틀린 얘기는 아니질 않소! 우린 호법이면서도 갈승천(鞨承天)의 눈을 피해 도망다녀야 하는 꼴이지 않소!]
[오제(五弟)의 말이 맞소. 그 갈가(鞨家)놈의 손을 피해 위험지대(危險地帶)인 중원까지 들어오지 않았소!]
그들이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청소옥은 고진의 뒤편으로 가 지친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대들이 비단 중원에 들어온 것은 그것뿐이 아닌 것 같은데요......?]
강유정의 돌연한 물음이었다.
북해칠호법들의 눈엔 순간 번뜩거리는 이채를 뛰며 말했다.
[그렇다. 우린 궁주님의 후손인 소궁주님을 찾으러 중원에 들어왔다. 허나 소궁주도 쫓기고 있는 몸이라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어 우리들도 찾을 수 없는 형편이다.]
[그대들의 그런 사정을 들으니 이번 한 번만은 용서해 주겠소! 하지만 더이상 비적질을하여 이곳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친다면 다음번엔 결코 용서치 않겠소!]
[대협(大俠)....... 우리 북해칠호법은 오랫동안 천외검법의 후인이 나타나길 기다려왔소.]
오제라 불리우는 사내가 말했다.
[천외검법은 과거 신선궁의 독보절학인 검법이었소. 우리를 제발 도와 주시오!]
[대협! 이렇게 부탁하오!]
80년 이상을 산 노인들이 일제히 고진 앞에 무릎을 꿇으며 머리를 숙였다.
그들의 태도는 비장한 각오를 한 것 처럼 보였다.
고진은 갑작스런 그들의 태도에 아연실색하며 그들을 급히 일으켰다.
[나는 나의 검법에 그토록 깊은 뜻이 담긴 줄은 몰랐소. 그러나 나는 그대들을 도와 줄 수 없을 것 같소.]
[대협! 진정 우릴 도와 주시지 않겠다면....... 우리들은 이 자리에서 목숨을 끊을 것입니다!]
[날 위협하는 것이오?]
[대협......! 북해신궁이 무너지면 중원도 결코 편치 않을 것이오!]
[그렇소! 갈승천, 그 놈은 마교의 사주를 받아 궁주를 암살하고 북해신궁을 차지했소! 그래서 우리들은 더더욱 중원으로 가지도 못하고 돌아가지도 못하고 있는 형편이오!]
[대협이 우릴 도와주지 않으면 우리들의 목숨도 오늘내일 할 뿐이오!]
[대협......!!]
그들의 끊임없는 호소에 고진은 점점 기울어지고 있었다.
[흥, 어림없는 소리 말아!]
청소옥의 단호한 음성이었다.
[하고많은 무림 고수들 중에서 하필이면 이분이란 말이냐?]
그녀의 말에 대형이라 불리우는 노인은 여전히 비장한 얼굴로 대답했다.
[여협(女俠)꼐선, 우리들의 내공수위가 어떻다 보시오?]
[......?]
[우리들의 내력은 어림잡아도 30갑자에 달하는 내공을 소유하고 있는 고수들이오. 그런 우리들을 단 일초에 간단하게 제압한 대협의 내공수위는 우리를 능가한다고 생각치 않으시오?]
청소옥도 그의 말을 듣고는 깜짝 놀랐다.
(우와, 30갑자씩이나......? 그렇다면 이 사람의 내공은......??)
고진은 청소옥을 보며 쓴 웃음을 지었다.
강유정은 그들이 고진을 칭찬하는 것을 보고는 그를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상공....... 어떻게 하실 작정이세요?]
[흐흠.......]
고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 문제는 나 개인의 문제는 아니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대들을 직접 도와 줄 수는 없소. 다만 그대들이 백도문에 가서 도움을 청할 수 있도록 해주겠소.]
[아......!]
백도문.......
중원의 영원한 빛이라 불리우는 정파연합회가 아니던가. 마교와의 전쟁을 선언하면서부터 크고작은 문제들을 해결해온 중원의 빛.
아무리 세외에 살고있는 북해칠호법들이라도 어찌 그 이름을 모르겠는가.
(백도문에 도움을 청할 수만 있다면.......)
순간, 그들의 얼굴엔 희색이 만연하게 변했다.
[황매....... 그대의 비단천이 필요한데.......]
고진의 말에 강유정은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치맛자락을 찢어 주었다.
그는 자신의 손가락을 깨물어 그 천위에 글을 써 내려갔다.
[이것을 갖고 백도문을 찾아가면 분명 그들이 도와 줄 것이오.]
대형이라 불리우는 사내가 비단천을 건네 받으며 다시한번 고개를 깊게 숙였다.
[진정 고맙소!]
[고맙소!]
그때, 멀리 달아났던 황금사두마차가 달려오고 있었다.
[상공, 마차가 돌아왔어요!]
[음.......]
주노가 땀을 뻘뻘 흘리며 달려와 마차에서 내려섰다.
[마마, 소인을 벌하여 주소서!]
그는 땅에 내려서자마자 머리를 땅에 처박고 일어설줄을 몰라했다.
[주노, 그대가 그대로 있으면 우리들을 떠날 수가 없지 않은가.]
고진의 말에 그는 고개를 들어보니 이미 세사람은 마차에 올라타고 있지 않은가.
[주노, 상공의 말씀 못 들으셨어요? 빨리 가지 않으면 진짜 화 낼거에요!]
강유정의 말에 주노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마차에 올랐다.
[달려라! 이럇!]
그들의 마차가 멀리 곤륜산으로 달려가고, 북해칠호법은 조금전 고진이 남겨준 천조각을 펼쳐 보았다.
[오오......! 진정 그사람은 신이 내려준 인물이로구나!]
[그런 것 같소....... 대형.......]
고진이 남겨준 천조각에 쓰여져 있는 글귀는 다음과 같았을 뿐이었다.
<이 서신을 갖고 가는 자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도와 주시기를 바라오. 구원신의 고진 친서>
그들이 놀란 것은 다름아닌< 구원신의>라는 이름이었다.
세외(世外)에서도 유명한 인물이질 않턴가. 너무나 유명한 나머지 흠모하며 사모하는 여인들 또한 한둘이 아니지 않턴가.
그런데 그를 직접본 영광을 얻었으니 그들이 감동하는 것 또한 무리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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