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무협. 무림독패(武林獨覇)
- 25 - 폐위(廢位)
황제는 고진이 황궁을 떠나려고 하자, 몹시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매제, 며칠만 더 머물러 줄 수 없겠는가?]
[폐하.......]
두 사람은 서로 말없이 눈빛만으로 서로의 마음을 주고 받았다.
떠날 수 밖에 없는 사람.
그러나 잡고만 싶은 사람.
황제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꼭 떠나야 하겠다면....... 내 보내 주리다.]
[폐하....... 소신이 앞으로 폐하를 언제 만날지도 모르니.......]
황제는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친히 한쪽팔을 내밀었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고 했던가?
고진은 황제의 완맥을 잡으며 진맥했다.
순간, 고진의 눈은 놀라움으로 가득했다.
[폐하, 언제 탕약을 드셨습니까?]
[탕약? 하하, 그러고보니 어제 황후가 내가 황매 때문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직접 약을 갖고 왔었는데....... 평상시엔 과일조차 가져다 주지 않던 사람이 약을 지어 왔었지.]
[폐하, 지금 폐하의 몸엔 극히 위험한 독이 침투해 있습니다.]
[독이라니......?]
[폐하가 저를 믿으신다면...... 이걸 드십시오.]
그는 자신의 왼쪽 소매를 걷어 올렸다.
거무틱틱한 팔찌가 아래로 미끄러내려가자 탄탄한 손목이 드러났다.
그는 오른손으로 자신의 손목을 살짝 그었다. 그러자 손목에선 선혈이 흘러내렸다.
그는 그것을 술잔에 받았다.
반각도 채 지나기 전에 그의 상처는 언제 아물었는지 흔적도 없었다.
그의 몸엔 상상도 하지 못할 자생치유력(自生治癒力)이 있었다. 그것은 천령혼침술을 12성을 익히고난 후에 그러한 능력이 생겼는데 실상 본인은 그것을 모를 뿐이었다.
[이것은 그대의 피가 아닌가.]
[그렇습니다.]
그는 기분은 나빴지만 술잔에 담긴 피를 마셨다.
마시고 반각이 지나자, 황제 자신도 놀라움에 어안이 벙벙했다.
혈색이 예전보다 더욱더 붉어지고, 20대의 건장한 기운을 되찾은 것 같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사내의 힘. 그곳에서 용솟움치는 정력이 되살아난 것이었다.
[이것은 무슨 조화인가?]
[폐하의 막힌 혈을 뚫었을 뿐입니다.]
[그래?]
고진은 그렇게 말했지만, 어디 구원신의의 피가 보통 피인가? 죽은 사람도 살려내는 보약이 아니던가.
[폐하, 황후마마를 조심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불경스러운 말인가?]
[폐하에게 독을 쓴 사람....... 그가 황후마마일지.......]
[그만! 그말은 못 들은 것을 하겠네. 두 번다시 그런 말을 한다면 황매의 부군이라 해도 용서치 않겠네!]
[.......]
고진은 내심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의 아내를 믿고 싶은 심정은 나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허나 당신의 그 과신이 언젠가 화가 될 것이오.)
x x x
유정은 홍색이 만연한채 화장을 하고 있었다.
머리를 빗고 연지를 바르고, 분을 칠하고....... 한껏 멋을 부렸다.
그때, 동경(銅鏡)에 비치는 낯선 사내.
[누구냐!]
유정은 놀라움과 불안함으로 소리쳤다.
[놀랄 것 없어.]
그 사내는 머리에 쓰고 있던 두건(頭巾)을 벗었다.
그러자 긴 머리가 찰랑거리며 흘러내렸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보고 있는 그녀로서도 놀랄 지경이었다.
[난 청소옥이라고 한다. 너의 세 번째 언니지.]
[세번째 언니......? 무슨 소리야? 내겐 언니가 없어!]
[흥, 멍청한 계집같으니라구! 내 남편이 누군지 알아?]
[내가 어떻게 당신 남편을 알아?]
[어휴....... 구원신의 고진. 그가 내 남편이야!]
[무슨......?!]
[흥, 그래 믿지 못하겠지.]
[그럴리가....... 그럴리가 없어.]
[그가 얘기하지 않턴가? 황제폐하는 이미 알고 있던데.......]
[그런.......]
강유정의 얼굴은 울상이 되어만 갔다.
[난 그가 첫남잔데....... 그는 내가 네 번째라니....... 흐흐흑......!]
청소옥은 그녀의 울음에 왠지 모를 고소(苦笑)를 흘렸다.
[억울하겠지....... 하지만 그것 또한 나의 운명이고, 너의 운명이야.]
[흐흐흑.......]
울음이 그치지 않았다.
청소옥은 그런 그녀에게 다가가 위로의 말을 나누었다.
두시진 가량이 지나자, 강유정의 울음도 그치게 되었고 청소옥의 말에 왠지 강한 믿음이 갔다.
[그러니까....... 언니는 정식으로 혼례는 올리지 못했군요!]
[에....... 그게 그러니까.......]
그녀가 더듬거리고 있을 때, 방문이 열리고 고진이 들어섰다.
고진이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깜짝 놀랐다.
[소옥......!]
[흥!]
청소옥은 고진을 보며 고개를 돌렸다.
[상공, 진정 청언니의 말이 사실인가요?]
고진은 쓴 웃음을 머금고 되물었다.
[무슨......?]
[내가 상공의 네 번째 부인이라는 거 말이에요.......]
그는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어떻게 해서든지 이 자리를 모면하고 싶었다.
[사실대로 얘기해요. 숨길 이유가 하나도 없잖아요?]
청소옥의 말이었다.
몹시 심술이 난 표정이었다.
[그래....... 유정 그대가 나의 네 번째 부인이오.]
그의 말이 끝남에도 강유정은 전혀 놀라는 눈치가 아니었다.
[사실이었군요. 오라버니도 알고 있나요?]
[황제폐하도 알고 계신 문제요.]
강유정은 왠지 모를 배신감에 울화가 치밀었다.
[유정.......]
[사실이었군요! 사실이었어......!]
그녀는 그말을 남기고 방에서 나가버렸다.
x x x
황제는 갑작스럽게 찾아든 황매로 인해 쩔쩔매고 있었다.
이렇게 당황해보기는 처음인 것 처럼.......
[오라버니가 진정 그럴수 있어요?]
[황매.......]
[오라버니는 그가 세명의 부인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를 시집보냈어요! 그건 도대체 무슨 심보에요?]
[황매.......]
[아무튼 오라버니한테 실망했어요!]
그녀는 발걸음이 무섭게 그곳을 벗어났다.
황제는 어린애를 달래는 보모처럼 그녀의 뒤를 따랐다.
[왜 자꾸 따라와요?]
[미안하구나.......]
[흥......!]
두 사람은 아옹다옹 거리면서 여의전으로 들어설 무렵이었다.
하나의 방에서 음탕한 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아아...... 호랑(呼郞)!]
두 사람의 발걸음이 동시에 멈추었다.
[우웃...... 소미이......!!]
황제의 안색이 순간 붉게 변했다.
소미이....... 황후의 본명이 아닌가.
황제는 금방이라도 방문을 부수고 쳐들어갈 것만 같았다.
황매가 그의 팔을 잡고 잠시 머뭇거렸다.
방안에서는< 삐거득......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질탕한 소리가 들려나왔다.
황제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한걸음을 옮기는 순간이었다.
[황제에게 먹인 약은 어떻게 됐어?]
사내의 음성이었다.
[호호호....... 걱정 말아. 구원신의라는 자는 오늘 황궁을 떠날 것이고 황제는 아무것도 모른채 오늘 밤 죽을거야!]
[흐흐흐....... 지금쯤 황제는 방바닥을 긁으며 신음하고 있겠지?]
황제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면 들을수록 치가 떨렸다.
순간, 조금전 고진의 말과 행동이 떠올랐다.
진맥을 하는 순간 자신의 피를 뽑아 마시게 하고, 소미이를 조심하라던 그의 말.......
결코 그의 말은 틀림이 없었다.
[하지만 황매 그 계집은 아까워.......]
[호랑, 당신의 10년공을 깨뜨린 구원신의를 없앨 방법이나 모색해 봐! 그렇게되면 황매는 자연 당신의 품으로 들어올테니까!]
[흐흐흐....... 갖지 못할바엔 부수어 버리는게 상책이지!]
[오호호호......!]
[자, 이리와....... 이놈이 또 하고 싶어 견디질 못한단 말이야!]
[어머나, 당신의 물건은 언제봐도 늠름하단 말야!]
두 사람은 또 한바탕 침상이 부서지도록 질탕(跌宕)하게 뒹굴었다.
황제의 눈에 서릿발이 들어선 것 처럼 무시무시해졌다.
황매도 더 이상 말릴 재간이 없었던지 잡고 있던 그의 팔을 놓아 주었다.
황제는 방문을 확 열치며 들어갔다.
[누구냐!]
[어머나!]
두명의 일남일녀는 황제를 보자 놀라움을 경치 못했다.
[이런 음탕한 탕부(蕩婦) 같으니라구!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호위무사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당장, 저 음탕한 년놈들을 끄집어 내라!]
두 사람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끌려나갔다.
[어떻게....... 어떻게 네 녀석이 살아 있을 수가 있지?]
호유명은 불신의 표정으로 물었다.
황제는 고소를 머금고 말한다.
[매제를 잘 둔 덕이지.]
[구원신의......! 그자 때문에 10년의 공든 탑이 무너지는구나! 으으윽!]
[폐하, 소녀를 용서해 주소서! 소녀는 저자가 시키는대로 했을 뿐입니다. 폐하!]
순간이었다.
<짜아악!>
소미이의 뺨에 열이 나도록 후려갈긴 사람이 있었다.
바로 강유정, 바로 그녀였다.
[그대는 입이 열 개라도 할말이 없다. 지조와 정조를 잃어버린 여인은 국모의 자리에 오를 자격도 없어!]
소미이는 입가로 흘러내리는 선혈을 머금고 말했다.
[지조와 정조를 잃은 여인이라....... 오호호호! 그래....... 난 지조와 정조를 잃은지 오래되었어....... 킥킥킥......!!]
그녀는 끌려가면서도 실성한 웃음을 그치지 아니했다.
[황매.......]
[오라버니....... 내가 잘못했어요. 나도 어쩔수 없는 여자인가봐요.]
[황매....... 네 부군에게 어림의통령관(御臨醫統領官)의 직책을 내리겠다. 제발 떠나지 못하게 해다오.]
[오라버니....... 상공을 누구보다도 잘 아실 것 같은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니 우습네요. 전 상공을 따를거에요. 소랑(素娘)처럼 지조를 잃을 순 없잖아요?]
그녀는 그말을 남기고 여의전으로 가버렸다.
x x x
황제를 암살하려던 소미이와 호유명의 계획은 그들의 죽음으로 결말이 났다.
태자 신분이었던 강유환도 폐위되어, 황족의 신분에서 노비의 신분으로 황궁에서 쫓겨나는 것으로 황궁의 비화는 그렇게 종식되었다.
허나, 유학중에 있던 강유룡은 이미 소미이의 간계로 감금된 생활을 하고있었으니.......
황실에선 또하나의 문제에 봉착하고 말았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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