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무협. 무림독패(武林獨覇)
- 31 - 무궁도(武宮圖)의 비밀(秘密)
용천우와 고진.......
그들은 이제 더 이상 호형호제할 사이가 아니었다.
[조카라는 것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외숙부.......]
두 사람은 말없이 대하고 있어도 서로의 마음을 충분히 알 수가 있었다. 이심전심이라고 했던가?
[그대들은 뭣하고 있소? 외숙부님께 인사 드리지 않고.......]
청소옥과 강유정도 그의 말에 눈물을 훔치며 용천우에게 큰절을 올렸다.
[외숙부님께 인사 올립니다.]
[그만들 일어 나시게. 질부(姪婦)들의 미모는 어제도 봤었지만 가히 절색이로군!]
[과찬이십니다.]
그들은 근 30여년만에 잃어 버린 가족을 되찾은 것이었다.
천애 고아로만 여겨졌던 고진에게 뜻밖의 혈육이 나타난 것이었다. 더불어 숨겨졌던 과거의 어머니의 이야기까지 함께 말이다.
그날밤,
용천우와 고진, 문팔룡은 한테 어울어져 술을 끊임없이 마셔댔다.
마치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듯이 마셔도 마셔도 끝이 없었다.
용천우의 부인인 초홍은 만삭이 다 된 몸이라 크게 거동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하고 싶어도 문부인들과 고부인들에 의해 움직이지 못한 것이었다.
음식은 문부인들이 솜씨를 부렸고, 곁에서 강유정이 돕고 있었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또 청소옥은 술심부름을 하느라 하루종일 들락날락 거려야했다.
[어휴, 저 인간....... 묵가촌에서 그 독한 독주를 마실때부터 진작에 알아봤어야 하는건데....... 어휴......!!]
청소옥은 술심부름을 다녀올때마다 투덜거렸다.
강유정은 청소옥과 고진의 만남에 대해선 자세히 몰랐기 때문에 이야기 해 달라고 졸랐다.
[언니, 상공과는 어떻게 만났어요? 얘기해 주세요. 네?]
[얘기 하기도 싫어!]
[언니.......]
[그래요, 우리도 잠시 쉴겸 얘기 해 보세요.]
문부인들도 합세를 해서 청소옥의 옛날 이야기를 끄집어 내려했다.
청소옥은 그들의 독촉에 못이겨 과거 마령주(魔領州) 무리들로부터 쫓기는 얘기를 시작으로 그에게 도움을 받아 묵가촌에 묵게 되었던 얘기며, 다시 만나게 되어 황궁에 들어간 얘기까지 실타래가 풀리듯 쉴새 없이 쏟아져 나왔다.
[호호호, 정말 술이 웬수군요.......]
[호호호.......]
청소옥은 자신도 한심스럽다는 듯이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그녀의 얘기가 끝나자, 문부인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들은 형가촌 바로 아랫마을인 상을촌(祥乙村)에서 태어났었다. 그들은 비단 얼굴만 똑같을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이 아프면 다른 한 사람도 아프고, 한 사람이 기쁘면 다른 한 사람도 기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인근 마을에는 이상한 소문이 났었던 모양이었다. 쌍둥이를 며느리로 맏이하면 집안이 망한다는 둥, 남편이 일찍 객사를 한다는 둥....... 별의 별소문이 나돌아 혼기에 접어든 그녀들이 시집을 가지못하게 되었었다는 것이었다.
그러길 1년이 지났을 무렵, 웃마을에서 중매가 들어왔는데 그 사람이 바로 문팔룡이었다. 그는 덩지가 크고 힘도 센 장사지만 얼굴이 험악해 어느 누구도 시집 오기를 꺼려했던 사내였었다.
윤씨자매 집안의 부모들은 중매가 들어오자마자 딸애들을 출가시켰다.
윤씨자매가 문팔룡을 처음 대면하는 순간, 그들은 그의 험악한 얼굴에 주눅이 들어 어쩔줄을 몰라 했다.
하룻밤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고 하지 않던가. 하물며 한달동안 살을 섞으며 지내오니 자연 정이 싹뜨게 되었다는 것이다.
혼인한지 1년이 훨씬 지났지만 아직 아이 소식이 없는 것이 남편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서슴없이 터놓았다. 또한 문팔룡은 생긴것과는 달리 마음이 너그럽고 정이 많은 사내라고 문부인들은 칭찬이 마르지 않았다.
그녀들의 얘기가 끝나자 이번엔 나이가 가장 많은 초홍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5년전이었어......]
초홍이 지금의 남편인 용천우를 만나게 된 것은 5년전이라고 했다. 당시 그녀는 강남에 있는 막강한 세력을 지닌 철혈세가(鐵血世家)의 당당한 큰 딸이었다. 오만하고 도도한 성격을 지니고 강호에 나왔는데 그때 만난 것이 용천우라는 것이다.
그녀는 첫눈에 용천우에게 반하게 되었고 그와 함께 강호를 돌아다니다 보니 자연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2년전, 분홍빛 사랑을 꽃 피우게 되었다고 솔직담백하게 얘기를 했다.
그리고 지금은 어릴적에 곤륜으로 무공을 배우러 떠난 동생을 만나러 곤륜으로 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 나의 얘기가 끝났으니 고부인이 얘기할 차례네요.]
초홍이 강유정을 가르키며 말했다.
[말씀 낮추세요. 상공의 숙모님이 되시는 분인데.......]
[어머나......, 그게 그렇게 되는 건가요? 호호호.......]
다섯명의 여인은 즐거운 듯 웃었다.
[저는 얘기 못하겠어요.......]
[아니, 왜 그래요? 모두다 얘기 했는데.......]
문부인들도 그녀를 보챘다.
청소옥만이 강유정이 말 못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녀가 당금 황제의 여동생이라고 말하면 과연 이들의 표정은 어떻게 변할까? 아무리 항렬이 높은 숙모라 할지라도 넷째한테 무릎을 꿇어야겠지?)
청소옥은 강유정의 귓가에 대고 뭔가 몇마디의 말을 하였다. 그러자 이내 강유정의 표정이 환하게 바뀌며 말했다.
[좋아요. 얘기 할께요.......]
강유정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얘기는 조금의 거짓이 없었다. 다만 자신의 신분이 황제의 동생이라는 것을 감추고 있다는 것 외에는.......
초홍은 가만히 그녀의 말을 듣고 있노라니 의문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황궁에서 저토록 자유분방하게 돌아다닐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게다가 황궁의 서고에서 일하고 있다니....... 일개의 시녀의 신분은 아닐 것이다. 시녀라면 황궁을 나오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혼인을 할 수도 없지 않은가.......)
청소옥은 초홍이 의심을 품고 있음을 눈치채고는 화제를 바꾸기 위해 말했다.
[서방님들이 또 술과 음식을 더 달라고 조르기 전에 얼른 술을 받아 와야겠어요!]
[그러고 보니.......]
문부인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강유정도 이렇듯 불편한 자리를 벗어날 수 있게 해준 청소옥에게 고맙게 생각하며 얼른 부엌으로 들어가 버렸다.
폭죽이 여기저기에서 터지고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는 중양절의 밤이었다.
x x x
화산파.
화산파 뒷산에 자리한 음침한 동굴 안에서도 떠들썩한 중양절의 시끄러운 밖의 전경이 눈에 선했다.
한 사내가 횃불을 들고 들어서고 있었다.
[오늘은 또 무엇을 가지고 왔느냐?]
[후훗......, 사부.......]
횃불을 들고 들어온 자는 황운보였다.
그는 죄수처럼 묶여있는 청운비 앞에 술과 음식을 내 놓았다.
[오늘은 중양절이라 술과 음식을 갖고 왔소. 벌써 20일이나 굶었으니 조금이라도 더 먹어 두는 것이 나을 것이오.]
[흥, 금수만도 못한 놈이 가져다 주는 쓰레긴 필요 없다!]
[후훗......, 기운을 차리지 않으면 영영 사저를 볼 수 없게 될텐데.......]
[네놈이 기어코......!!]
[후훗....... 양자택일(兩者擇一)을 하시오. 딸이오? 무궁도요?]
[이......,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놈!!]
[크크크......, 크하하하하!!]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밖으로 나가고, 컴컴한 동굴 속에 홀로 남은 청운비의 얼굴은 천의 얼굴을 지닌 사람처럼 울그락불그락 그 모양이 몹시 일그러졌다.
그렇게 반시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아버님!]
어두침침한 동굴에서 들려오는 여인의 음성이었다.
[소옥이냐?]
청운비는 어둠속에서 그 모습을 찾으려고 안력을 돋구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의 바램이었다. 동굴 앞에 아른거리는 두 사람이 그의 눈에 비칠뿐 더 이상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아버님! 놔라! 이 금수만도 못한 자식아!]
[크크크....... 사부, 사저가 내 손에 있소! 어서 결정해 주시오!]
[으......!!]
청운비는 짧은 신음을 내뱉었다.
순간이었다.
[아아악! 이 자식아, 어딜 만지는거야? 놔! 놓으란 말이야!]
여인의 비명소리가 동굴안에 메아리치듯 울려 퍼졌다.
[사부......, 나의 손은 지금 사저의 부드러운 젖가슴을 주무르고 있소.]
청운비는 어둠 속에 보이는 그림자를 보며 이를 갈았다.
[으......!!]
[아아악! 아버님......!!]
여인의 비명소리가 재차 들려왔다.
[후후......, 사저의 젖가슴을 빨아 보셨소? 무척이나 달콤하군요!]
<치렁치렁......!!>
청운비의 수족을 묶어 두었던 쇠사슬의 흔들리는 소리였다.
동시에 그의 눈과 귀에 들려오는 소리.......
<부우욱! 찌이익!>
옷자락이 찢겨나가는 소리였다.
[아흐흐흑....... 아버님......!]
여인은 울먹은 소리로 청운비를 부르고 있었지만 청운비로서도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의 일이었다.
[사부......, 사저의 벌거벗은 몸을 본 적이 있소? 정말 탐스러워 혼자 보기가 무척 아까울 지경인데....... 이 거무틱틱한 수풀 속에 무엇이 있는지 한 번 볼까?]
[아아악!]
여인의 비명이었다.
청운비는 부르르 떨리는 체형을 겨우겨우 진정시키며 소리쳤다.
[운보! 무궁도가 있는 곳을 알려 주겠다!]
[후훗......, 빨리 말하시오. 난 지금 나의 정력(定力)을 시험하고픈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
[내 방....... 내 방 첫 번째 책꽂이 서랍을 열면 그 안에 열쇠가 있다. 그 열쇠로 병풍 뒤에 있는 초상화를 들추면 하나의 비밀문이 나타날 것이다. 그 안에......, 그 안에 무궁도가 있다.]
[후훗, 고맙소. 사부.......]
그의 말이 끝나자 여인이 땅바닥으로 쓰러졌다.
[소옥아!]
청운비는 소리쳤지만 더 이상 그녀는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이렇듯 아름다운 몸을 그냥 지나치면 사내가 아니지.......]
황운보는 그 여인을 덮쳤다.
달빛에 아른거리는 사내의 율동에 극악을 금치 못하는 청운비.......
[개보다도 못한 버러지 같은놈......!!]
눈 앞에서 딸아이가 강간을 당하는 모습을 지켜보고픈 아버지가 어디 있을까?
하물며 아무런 손을 쓰지도 못하는 자신의 무능함을 저주하는 그의 심정은 과연 어떠할까? 당장이라도 혀를 물고 자살하고픈 생각밖에 없었다.
일각여가 지났을 무렵,
[아무리 생각해도 사저의 몸은 너무 아깝단 말이야.]
[흐흐.......]
실성이라도 했는가?
돌연 청운비의 침음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아무리 무궁도를 얻었다 하더라도 뜻을 모르면 아무런 짝에도 쓸모가 없는 지도일뿐이다.]
[후훗....... 사저가 내 손에 있다는 걸 잊지 마시오!]
그는 쓰러진 여인을 안고 사라졌고, 쇠사슬에 묶여있는 청운비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어느새 흘러내리고 있었다.
[소옥아....... 이 못난 애비를 용서해라....... 크흐아아아아......!!
아아아......!!]
짐승의 울음소리인가?
처량하리만큼 서글프고 원한이 가득맺힌 울부짖음이었다.
(무궁도의 비밀을 완전히 풀 수 있는 사람은 만상제일뇌(萬象第一腦) 제갈여의(諸葛麗懿) 밖에 없다. 무궁도에 얽힌 것은 비단 황금성에 관한 것 뿐만이 아닐 것이다. 천하제일의 무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도 결코 거짓이 아니다. 무궁도 뒷면에 새겨진 파천룡권법(破天龍拳法)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권각술을 총 망라해 놓았을 뿐만 아니라 그 어떤 권각술보다도 뛰어날 것이다. 그런데 제대로 써먹어 보지도 못하고 암습을 당하다니.......)
청운비의 눈물과 함께 또다시 끊임없는 괴성이 뒷산 전체를 휘감았다.
x x x
황운보는 방안에 들어서자마자 침상에 하나의 물체를 집어 던졌다.
그 물체가 침상에 부딪치자 마자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야! 아프단 말이야!]
여인의 음성이었다.
[홍매(洪妹)의 연기에 그 늙은 능구렁이 조차도 깜쪽같이 속아 넘어 간 모양이야?]
[당연하지! 사저의 잠버릇까지 모두 알고 있는 내가 사저의 흉내를 내는 것 쯤은 식은 죽 먹기지. 호호호.......]
홍여주(洪麗朱)....... 이것이 그녀의 이름이었다. 화산파의 오룡삼봉(五龍三鳳)이라 불리우는 여덟제자중 다섯 번째로 삼봉에 속하는 여인이었다. 나이는 올해로 20세가 되었다.
그녀는 침상에서 내려오며 황운보에게 다가가 그에게 몸을 기대었다.
[사형......, 우리 시간도 많은데.......]
그녀의 손이 사내의 앙가슴을 촉촉한 손길로 더듬어 가고 있었다.
황운보는 가만히 그런 그녀의 태도를 관망했다.
여인의 손이 점점 아래로 내려오더니 이윽고 사내의 고의(袴衣) 안쪽으로 슬금슬금 들어가는 것이었다.
[오호호......, 사형....... 사형도 나를 느끼고 있었구나....... 어느새 이렇게 딱딱해졌어?]
그녀의 음탕하면서도 고혹적인 손놀림이 사내의 고의안에서 유영(遊泳)하고 있는 사이에도 사내의 표정은 전혀 탐욕스럽다거나 음탕하지 않았다.
여인의 혓바닥이 사내의 귀며 코며 입이며 닥치는대로 마구 핥아대며 사내의 몸에 달라붙으려고 했다.
[홍매....... 이제 그만해라.......]
[아이, 사형....... 그러지 말고.......]
그녀의 손이 그의 바지를 벗기려고 하자 사내의 손이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순간 그녀는 사내의 눈을 보고는 움찔하니 놀라고 말았다.
[사형.......]
[우리는 이짓거리보다 먼저 해야할 일이 있다.]
[칫......! 좋아.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황운보는 책꽂이의 서랍을 열었다. 조금전 동굴에서 청운비가 가르쳐준 그대로였다.
황운보는 서랍안의 열쇠를 들고 병풍 뒤의 그림을 걷어냈다. 그러자 그 열쇠를 꽂을 수 있는 구멍이 있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열쇠를 구멍에 꽂아 빙글 돌렸다.
<드르르르......륵......!>
벽이 갈라지며 하나의 밀실이 보였다.
[우와......! 이런곳에 이런 밀실이 있을 줄이야......!!]
[들어가자!]
황운보와 홍여주는 그 안으로 빨려들 듯이 스며 들었다.
<드르르......르륵......!>
갈라진 벽은 다시 굳게 잠기었다.
홍여주가 밀실안에 화촉을 밝히자 밀실은 금새 환해졌다.
순간, 밀실의 벽에 걸려진 하나의 지도가 그들의 눈에 들어왔다.
[저것이 천하제일의 무신으로 만들어 준다는 무궁도로군!]
홍여주는 그렇게 말하며 벽에 걸린 지도를 가볍게 걷어 왔다.
황운보는 그것을 석탁(石卓)위에 펼쳤다.
[이곳이 어디를 나타내는 장소일까?]
[글세......?]
두 사람은 그 무궁도를 한참동안 뚫어져라 쳐다 보아도 전혀 그 안에 얽힌 비밀을 찾을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영감탱이 같으니라구!]
[호호......, 사형. 너무 그렇게 걱정하지마. 이 홍여주가 있잖아?]
[후훗....... 홍매의 말이 맞아.......]
황운보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잔잔하게 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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