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무협. 무림독패(武林獨覇)
- 34 - 최악(最惡)의 인연(因緣)
중원의 가장 떨어진 곤륜산에 자리잡고 있는 곤륜파(崑崙派)는 사람의 발걸음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곤륜엔 예로부터 기화영초(奇花靈草)는 물론 희귀한 동물또한 많기로 소문이 났었다.
고진은 마차에서 갑작스럽게 내렸다.
[나는 이곳을 둘러보다가 가겠어.]
[왜 그러세요?]
강유정이 못내 궁금하단 듯이 물었다.
[이곳에 피어있는 갖가지 약초들이 내 관심을 끌어서 말야.......]
[그렇군요....... 그럼 저도 내리겠어요.]
[아냐, 청매와 황매는 먼저 곤륜파로 가. 나는 뒤따라 가겠어.]
[상공이 함께 가지 않는데.......]
[이걸 갖고 가면 반갑게 맞이해 줄 사람이 있을거야.]
그는 하나의 죽통(竹筒)이었다.
강유정이 그것을 건네 받으면서도 못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주노는 마차를 다시 몰았고, 고진은 산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x x x
소림사(少林寺).
은은한 향내와 불경(佛經)을 외는 소리와 더불어 한 사람의 음성이 들려왔다.
[시주(施主)....... 진정 훌륭한 일을 하셨소!]
흰수염이 더더욱 자애스러운 노승의 말이었다.
[아닙니다. 소림사에 살아있는 신승(神僧)이라 불리우시는 일지공덕(溢之功德) 대명대사(大明大師)를 직접 볼 수 있었으니 오히려 제가 더 영광스럽습니다.]
[과찬이외다. 용시주(龍施主)의 사심없는 군자다운 성품은 만인의 모범이 될 것이외다. 허허허.......]
용천우는 수수하게 웃는 대명대사를 보니 자신의 마음또한 한없이 자애스러워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 책에 얽히 사연을 용시주는 알고 계시오?]
[전혀 모릅니다.]
대명대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를 했다.
[이 책은 파천록이라 불리우지요. 허나 그것은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고, 이 책 본래의 제명(題名)은< 천외비급(天外秘 )>이라고 하지요. 과거 3백년전 중원에서 가히 패도적인 검법을 보인 적이 있던 천외무승(天外武承) 담천욱(潭天旭)의 모든 무공이 이 비급에서 비롯된 것이었소.]
[천외무승 담천욱이라면....... 신선궁의 전설......?!]
[용시주도 많이 알고 계시는구려. 그렇소. 바로 신선궁의 절세비급이었던 이 비급이 어떻게 중원으로 흘러들어왔는지 자세히 아는 사람은 없소. 하지만 이 비급을 얻음으로서 절세의 신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 때문에 그동안 중원은 한때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지요. 다행히도 진본(眞本)이 수중에 들어오게 되었으니.......]
용천우는 그 책 하나에 수많은 목숨을 잃은 것을 목격했고, 자신또한 추적을 당하지 않았던가. 그 책의 역사가 3백년이 되었다면 그 동안에 흘린피 또한 상상도 못할 엄청난 것이리라.
[용시주, 혹시 이 책을 보신 적이 있소?]
순간, 용천우는 뜨끔거렸다.
그는 순간 부정을 하려고 입을 열었다. 허나 대명대사의 눈을 바라보는 순간, 거짓을 말할 수 없는 무언가가 엄습해왔다.
[사실, 제 조카가 그 비급을 한 번 읽었었습니다.]
[단지 읽었을 뿐이오?]
[네....... 절대로 그 비급을 보며 익힌 적은 없습니다.]
[허허....... 대단한 조카분을 두셨소이다.]
[......?]
용천우는 대명대사의 엉뚱한 소리에 그저 어안이 벙벙했다.
[대사님, 그건 무슨 말씀입니까?]
[사실, 이 책 표지를 보니 내공이 심후막측(深厚莫測)한 사람이 만진 자국이 남아 있었소. 나는 이것이 용시주의 것이 아닌가 생각했던 것이었소. 그런데 조카분의 것이라니.......]
[조카도 본의 아니게 그 책을 보았을 뿐입니다.......]
[인연이겠지요....... 허허허.......]
대명대사는 편안하면서도 가식없는 너털한 웃음을 지으며 즐거워했다.
용천우는 도무지 그의 깊은 속 마음의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여 도리어 불안하고 초조하기까지 했다.
그런 그의 마음은 소림사를 벗어나고 있는 순간에도 떠나지 않고 있었다.
특히 대명대사의 마지막 말이 더욱 더 의미심장하게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다.
[만일 조카분을 만나거든 이말을 꼭 전해 주시오. 강함은 부러지기 쉬운 법이라 부드러움의 이치를 깨달을 때 진정한 강함의 이치를 깨닫게 될 것이라고.......]
x x x
곤륜파.
황금사두마차가 다가오자 한명의 청년이 다가갔다.
[멈추시오!]
그의 말에 마부는 말 고삐를 잡아 당기며 소리쳤다.
[워워......!]
마차가 멈추어서자 그 청년이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곤륜파에 무슨 일이 있어서 오신 것입니까?]
[우리들은 귀파의 장문인을 뵈러왔소.]
마부의 말에 청년은 인상을 약간 찡그리며 마차를 살폈다.
(고관대작들이나 타는 사두마차를 몰고 온 것을 보니 보통 인물은 아닐 것이다. 이런 손님들을 사부님은 가장 싫어 하시지.)
[사부님은 최근 몸이 편찮으셔서 손님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그가 그렇게 말하고 그들을 돌려보낼 속셈이었다. 헌데 마차안에서 한 사람이 내리더니 그를 보며 소리쳤다.
[헛소리말고 이 물건을 장문인께 보여 드리고 오너라!]
청년은 돌연 눈살을 찌푸리며 소리친 사람을 바라보았다.
절세의 미녀....... 곤륜의 꽃이라 불리우는 유청화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의 아름다움을 지닌 여인이었다.
그가 그녀에게서 받은 것은 하나의 죽통이었다.
[어서 보여 드려라. 조금이라도 늦게 보여주어 불상사가 생긴다면 그건 모두 너의 책임이다!]
청소옥은 화산파의 오룡삼봉중에서도 첫째였다. 그녀가 아랫사람 부리는데는 그 누구 못지 않게 노련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그녀의 성격또한 만만치가 않지 않던가.
그 청년은 그 죽통을 받고서는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강유정은 마차에서 내려 주위의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하고 있었다.
잠시후, 그 청년이 헐레벌떡 뛰어나오며 소리쳤다.
[죄송합니다. 어서 드시지요!]
청소옥과 강유정은 그의 안내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또다른 한 청년이 다가와 주노와 함께 말이 쉴수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두명의 중년인과 두명의 여인이 마중나와 있었다. 헌데 그들의 표정이 영 달갑지 않은 듯 했다.
[하하, 이거 정작 보여야 할 사람은 보이지 않고 엉뚱한 미녀들만 들어서는군요!]
콧수염이 덥수룩하고 날렵하게 보이는 중년인이 말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젊은 여인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귀하들이 이 죽통을 갖고 오신 분들이 맞나요?]
[그렇소!]
청소옥은 당당하게 소리쳤다.
그러자 그 여인은 뒤쪽에 서 있는 또다른 젊은 여인을 바라다 보았다. 뒤편에 서 있는 여인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그들을 지켜 보고 있었다.
마중나와 있는 사람들.......
바로 유호청부녀와 소홍, 그리고 장만보였다.
그들은 고진의 죽통을 보고 그가 온줄 알고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이렇게 마중을 나왔었는데, 정작 보여야할 그는 보이지 않고 엉뚱한 여인들만 나타났으니.......
[그대는 이 죽통의 임자완 어떤 관계인가요?]
소홍이 다시 물었다.
그러자 강유정이 침착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저분이 곤륜파 장문인이 맞나요?]
그녀의 말에 유호청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네. 내가 바로 곤륜파의 장문인인 유호청일세!]
그의 말이 끝나자 강유정은 생긋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먼저 인사 드리겠어요.]
[잠깐!]
장만보가 돌연 소리쳤다.
[아가씨들이 무엇 때문에 인사를 올린다는 거지? 도대체 고의원과는 어떤 관계지?]
청소옥은 영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래도 내색치 않고 대답했다.
[우리들은 그분의 부인들이에요!]
[뭐? 부인들이라고?!]
장만보와 유호청은 약속이나 한 듯이 외쳤다. 그리곤 곁에 있는 유청화를 슬쩍 바라보았다.
[그대들이 상공의 부인들이면 저의 동생이나 다름없네요!]
유청화.......
그녀는 방긋 웃고 있었다. 자신의 남편이 다른 아내를 두었다고 하는데도 전혀 시기나 질투심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지 않은가.
청소옥도 그녀의 미소에 무너지고 있었다.
(그 사람의 부인들은 한결같이 착하고 빼어난 미모를 지닌 사람들이구나....... 분명 저 사람이 첫째 언니일거구.......)
청소옥은 유청화가 첫 번째 부인이고, 소홍이 두 번째 부인인줄로만 알았다. 아니 그렇게 보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상공은 어디 계시지?]
강유정이 대답했다.
[상공은 이곳에 기화영초가 많아 그냥 지나치기 아깝다면서 산으로 들어갔어요.......]
[하하, 이거 며칠동안은 얼굴도 보지 못하게 생겼군.......]
유호청은 호탕하게 웃으며 객실로 들어섰다.
그를 따라 나머지 사람들도 안으로 들어갔다.
청소옥과 강유정이 나란히 앉았고 그 맞은편에 유청화와 장만보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상석엔 휴호청이 앉아 있었다.
소홍이 차를 갖고와 그들에게 나눠주곤 유청화 곁으로 가서 앉았다.
[헌데....... 누가 셋째 동생이지?]
유청화가 청소옥과 강유정을 보며 물었다.
강유정이 쑥스러운 듯이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여기 있는 청언니가 셋째이고, 제가 넷째에요.......]
그녀의 말에 청소옥도 얼굴이 붉어지는지 고개를 돌렸다.
강유정은 유청화와 소홍을 보면서 물었다.
[어느분이 첫째 언니세요?]
[응?]
유청화와 소홍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 웃음을 띄며 대답했다.
[호호, 첫째언닌 아직 오지 않았는데.......]
[네에? 그럼......?]
소홍이 미소를 머금은채 강유정에게 말했다.
[나는 그냥 곤륜파의 제자일 뿐이에요.]
강유정과 청소옥은 그녀의 말에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그때, 유호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대들이 사위의 부인들이니....... 내 딸들이나 다름없으니 이곳이 내 집이라 생각하고 편히들 쉬게나. 늙은 우리들은 장기나 두러 갈까?]
[유대형, 오늘은 절대 무르기 없깁니다!]
[허허허.......]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뒤쪽으로 사라졌다.
유청화는 청소옥과 강유정을 보며 고진의 안부를 물었다.
[상공은......, 상공은 건강하지?]
[물론이에요.]
[아....... 다행이구나.......]
청소옥은 문득 용봉객잔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비록 그때는 얼굴은 보지 못했으나 음성과 말투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때의 그 부인과 시녀처럼 따르던 여인....... 바로 유청화와 소홍이었음을.
[아참, 내 정신 좀 봐....... 피곤할텐데 내가 너무 오래 붙잡아 뒀구나. 나를 따라와. 잠 자릴 안내해 줄테니.......]
유청화는 그녀들과 함께 방으로 가고, 소홍은 뒷정리를 한 후에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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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옥과 강유정이 곤륜파에 머무른지도 벌써 달포가 지나갔음에도 고진은 전혀 돌아올 줄을 몰랐다.
[이거 무슨 일이 생긴거 아냐?]
[청언니, 그게 무슨 소리에요? 재수없게!]
[미안해....... 하지만 무슨 인간이 누굴 청상과부로 만드려고 작정했나? 어휴......! 연락좀 하고 다니면 어디가 덧나나?]
유청화는 성질을 부리는 청소옥을 보며 상큼한 미소를 머금고 창문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경성에서 헤어진 뒤 6개월 동안이나 그의 얼굴만 그리며 살아온 그녀가 아니던가. 지금도 구름하나가 고진의 얼굴로 비춰지고 있는 것을 그 누가 보아 줄까?
그때였다.
[아가씨! 반가운 손님이 왔어요!]
소홍이 불쑥 들어오며 소리쳤다.
[상공이니?]
유청화는 대뜸 물었다.
소홍의 대답을 청소옥과 강유정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소홍은 잠시 우울해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상공은 아니에요.......]
[그럼 누가 왔다는 거지?]
[큰부인이 오셨어요! 아가씨!]
[언니가......?]
유청화의 언니이자 큰부인이라 불리우는 사람은 단 한명....... 바로 채미란 밖에 없었다.
유청화는 밝은 미소를 머금고 객실로 향했다.
객실엔 채미란과 한명의 중년부인과 늙은 거지, 그리고 두명의 청년이 있었다.
[언니!]
[유매(留妹), 잘 있었어?]
유청화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무척이나 반가와 했다.
[언니의 배가....... 혹시?]
채미란은 말없이 싱긋 웃었다.
[언니......! 축하해요!]
[고마워....... 참, 소개할께.]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곁에 앉아 있는 채예상을 보았다.
[나의 어머님이셔. 어머니, 그이의 두 번째 부인이에요.]
[백모님, 안녕하세요.]
[음.......]
채예상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인사에 답했다.
[참, 언니....... 저도 소개 시켜 줄 사람이 있어요.]
유청화는 그녀에게 청소옥과 강유정을 소개시켰다. 그런 그들을 보고 있는 채예상은 어지러운 듯이 머리를 짚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돌연, 큰 웃음소리가 쩌렁쩌렁하게 들려왔다.
[으하하하! 이게 누구신가!]
유호청이었다.
뒤에는 장만보도 함께 하고 있었다.
[유대....... 아니 아버님.......]
[하하, 호칭이야 아무렴 어떤가?]
[고부인, 오래간만이오!]
[장대형도 건강하시지요?]
그녀의 말에 장만보는 깜짝 놀랐다.
(이거 정말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구나. 반년전만해도 나를 업신여기는 것 같더니....... 나를 대형 취급해주다니......!!)
유호청은 그녀가 임신한 사실을 알고는 더욱더 축하를 해주고 있었다. 실로 친가족이 만난 것 보다 더 정이 넘치는 만남이었다.
[고부인, 이분은......?]
[아, 저의 어머님이세요.]
[하하, 반갑소이다. 나는 이곳의 주인인 유호청이라고 하오.]
[반갑소.......]
채예상은 퉁명하게 대답했으나, 유호청은 전혀 개의치 않은 듯 했다.
[이 놈아, 나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느냐?]
[하하, 홍사숙....... 너무 보채지 마시오. 그렇지 않아도 내가 홍사숙이 오면 대접할려고 백팔화미향주를 열단지나 준비해 두고 있소이다.]
[흐흐......, 그래? 그렇담 이러고 있을게 아니잖아!]
[하하하!]
소홍은 한쪽 귀퉁이에서 그런 그들의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면서 눈물 짓고 있었다.
(정말 잘 된 일이야. 아....... 갑자기 부모님들이 보고 싶어지는구나....... 언니들도 잘 있을까?)
그녀는 밖으로 슬그머니 빠져나갔다.
밖엔 눈이 나리고 있었다.
그녀는 가볍게 몸을 날려 허공으로 날아 올랐다.
그리곤 그녀의 몸은 어디론가 점이 되어 사라졌다.
x x x
곤륜파에서 십리 가량 떨어진 이름도 없는 산.
고진의 품안엔 온갖 잡풀들이 뒤섞여 있었다. 보름동안 그는 몇군데의 산을 돌아다니며 생전처음 보는 기화영초들을 고르고 골라 품에 넣었던 것이었다.
[이만하면 좋은 약을 만들 수 있겠지?]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으아악!]
순간, 그의 귓가에 들려오는 비명소리였다.
고진은 재빨리 소리가 난 곳으로 향해 달려갔다.
그리 높지 않은 절벽이 보였다.
[으.......]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고진이 아래를 내려다보고는 깜짝 놀랐다.
[소홍!]
그는 급히 아래로 뛰어 내렸다. 사뿐하게 절벽 아래로 내려설 수 있었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었다. 한명의 여인과 어린아이가 절벽 조금 안쪽에 눈과 바람을 겨우 피할 수 있는 동굴 안쪽에 누워 있었다.
그는 소홍을 안아 들어 동굴 안쪽으로 들어가 자리를 마련하고 그 자리에 눕혀 상처를 살펴 보았다.
[뱀한테 물린 상처......? 이런 추운 날씨에도 뱀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분명, 그녀의 발목에 난 상처는 독을 지닌 뱀의 이빨 자국이었다.
순간이었다.
<스스스스......>
한 마리의 뱀이 동굴 안쪽에서 모습을 나타내더니 이내 작은 구멍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저건, 음양쌍각사(陰陽雙角蛇)......? 그렇다면 소홍은 음양쌍각사에 물렸단 말인가!]
정말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음양쌍각사.......
한 번 물리면 춘약보다도 몇십배 강한 최음으로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켜 마침내는 전신의 혈관을 모조리 터지게 만들어 버리는 무서운 독사였다. 치료방법은 독이 심장으로 올라오기전에 육합(肉合)을 하는 방법밖에 없다.
[으음.......]
소홍보다도 먼저 이 동굴에 있었던 사내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흘러나오는 신음소리였다.
고진은 그 아이의 맥을 짚어 보았다.
[다행이 이 아인 음양쌍각사에 물리진 않았구나. 단지 오랫동안 굶어 잠시 기절한 것 뿐이다.]
그는 곁에 있는 여인의 맥을 짚어 보았다.
[이런......! 이 여인은 음양쌍각사에 물린지 반시진 정도는 된 것 같은데, 하필이면 소홍과 이 여인이 여기에서.......]
고진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는 얼굴에 이미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여인의 옷을 벗겨냈다.
초췌한 얼굴과는 달리 유난히도 매끈한 몸을 갖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몸위로 천천히 누웠다.
곧이어 벌여지는 격렬한 몸놀림은 가히 능숙하다 못해 초절한 기교로 여인의 몸을 짓이겼다.
[우웃......!]
고진은 우연히(?) 그녀의 왼쪽 젖가슴에 손을 얹게 되었는데, 순간 그의 표정은 무척이나 불신으로 변해 버렸다.
[전혀 반응이 없어! 이건......? 음양쌍각사에 중독된게 아니잖아!]
이건 또 무슨소리인가?
구원신의가 오진을 할 수도 있단 얘기인가?
그가 여태껏 오진을 한적이 있었던가?
아마 한 번도 없었다. 한눈에 척 보아도 그 사람의 병세를 알 수 있는 신안(神眼)을 지닌 그가 아니던가.
그런데 지금 고진이 하고 있는 것은 무엇을 위한 행동이란 말인가? 자신의 오진으로 애꿎은 여인의 정조가 멋대로 유린되고 있는 이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인가? 그것은 그 자신도 알지 못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그는 자신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분명 자신은 그녀가 음양쌍각사에 중독된 것이라 판단하여 그녀의 동의없이 그녀의 순백지신을 더럽히고 있지 않은가.
그런 그의 행동이 무림잡배들과 다른게 무어란 말인가? 여인을 겁간하는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그는 그 자세에서 그녀의 완맥을 다시 잡아 보았다.
[오장육부가 제멋대로고, 맥박조차도 제멋대로다. 세상에 이런 신체를 가진 사람도 있단 말인가? 오장육부가 제 자릴 벗어났는데도 이처럼 숨을 쉬며 살 수가 있었단 말인가?]
그는 그녀의 양쪽 미심혈(眉心穴)에 지긋이 누르며 그녀의 천령개(天靈蓋)에 한손을 가져갔다.
[이럴 때 침통이 없다니....... 하는 수 없지.]
그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몸을 찔러댔다. 그녀의 회음부(會陰部)를 제외한 전신혈도를 모두 제압하고 다시 그녀의 백회혈(百會穴)을 누르며 내공을 주입 시켰다.
<우우우......웅!>
바람이 울리는 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희뿌연 연기들이 그의 전신을 휘감쌌다. 아울러 그의 아랫배에 깔린 그녀의 몸에서도 붉은 연기가 피어 오르는 것이었다.
돌연 그의 몸이 천천히 움직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방사할 마음이 있었던 것일까? 그럼에도 그의 손은 쉴새없이 그녀의 몸을 더듬었다.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반시진이 지났을 무렵,
[헉헉......! 헉.......]
고진은 거센 숨을 내쉬며 하늘을 보며 누워 있었다.
[나의 진력을 8할이나 사용할 정도의 난치병(難治病)이었다니....... 고쳐놓고도 무슨 병인줄 모르겠구나.......]
아마 예전의 그였다면 며칠동안은 깨어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는 어기적어기적 거리며 소홍의 완맥을 잡았다.
[다행히 늦지 않았구나.......]
그는 소홍의 옷을 벗겨내렸다.
소홍의 몸은 다른 아내들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의 완벽함을 갖추고 있었다.
허나 그는 그런 감상에 빠질 만큼 느긋하지가 못했다.
그는 소홍의 몸을 서서히 눌러대기 시작했다.
[으음.......]
소홍의 비음소리가 간간히 들려왔지만 고진의 지금 행동은 거의 비몽사몽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그녀를 치료하기 위해 마지막 힘을 다 쏟아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한날 한시에 한 남자에게 몸을 내맡겨 버린 여인들의 피할 수 없는 운명.
정말 최악의 인연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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