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무협. 무림독패(武林獨覇)
- 36 - 환락고(歡樂蠱)
숭산(崇山) 소림사(少林寺).
세명의 사미승(沙彌僧)이 대전앞에 소복히 쌓인 흰눈을 쓸고 있었다.
한 사미승이 돌연 빗자루를 세우며 말했다.
[덕지(德志), 오늘은 시장을 보러 가는 날이지?]
[응.]
덕지라 불리운 사미승은 여전히 눈을 치우면서 대답했다.
[덕지는 좋겠다. 나나 덕수(德授) 사형은 너처럼 시장을 보러 갈 수가 없으니.]
[덕명(德明), 너 보다 덕지가 더 사숙들한테 귀여움을 받는 모양이지.]
칭찬인지 비꼬는 말인지 도통 알 수 없는 말이었다.
사미승들은 대부분이 허드렛일을 하다가 조금 나이가 들면 소림사의 정식 승려로 인정을 받는 것이 통례였다.
헌데 덕지라는 사미승은 다른 사형들보다도 오래토록 힘든일을 도맡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덕지의 사부는 혜청(慧淸)이라는 무승(武僧)이었다.
덕수와 덕명이라 불리우는 사미승이 한가롭게 쉬고 있는 사이에도 덕지는 쉬지 않고 눈을 치우고 있었다.
(사부님은 절대로 다른 사형들에게 비밀을 지키라고 신신 당부를 하셨다. 내가 이미 사부님께 무공을 배우고 있다는 것을 알면 다른 사형들이 무안해 할 것이다.)
덕지가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는 사이, 눈썹마저도 백색물감을 들인 듯한 노승하나가 지나가고 있었다.
바로 소림사의 살아 있는 신승이라 불리우는 대명대사였다.
덕수 사미승이 그를 보고는 얼른 눈을 쓰는 시늉을 보였다. 덕명도 그를 따라 다급히 눈을 치우고 있었다.
대명대사는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대전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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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大雄殿).
대명대사가 안으로 들어서자, 모두 일어나 합장하며 그를 맞았다.
[방장, 무슨일이기에 면벽수양중인 나를 부른겐가?]
방장 공명(空明)이 좌중(坐中)하며 대답했다.
[사숙님, 이 서찰을 일단 봐 주십시오.]
그가 공손히 대명대사 앞으로 하나의 피뭍은 서찰을 건냈다.
대명대사는 그 서찰을 펼쳐 보았다.
<본인은 허명후(許鳴吼)라는 상인(商人)이오.
이 서찰을 구원신의나 소림사의 대명대사가 받아보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오.
본래는 본인이 이 서찰을 구원신의나 대명대사께 전해드려야 하는데 본의 아닌 사정으로 인해 다른 사람 손에 전해 드리게 되어 대단히 죄송하오.
먼저 이 서찰을 적어 준 사람의 이름을 밝히자면 그는 타미르라는 서역스님이오.
그가 내게 해 준말은 다름 아닌, 환락고(歡樂蠱)의 출현이오.
(中略.......)
이 일은 촌각을 다투는 일로 하루라도 빨리 환락고를 퇴치하지 못하면 중원 천하는 패륜천하(悖倫天下)가 될 것이오.
나 역시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패륜을 저지르고 말았으니.......>
대명대사는 그 서찰을 읽으면서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몸을 떨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야할 것이 존재하게 되었구나.)
방장 공명이 정적을 깨고 그를 향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사숙님, 도대체 환락고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대명대사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될 것이라네. 사람의 이성(理性)을 마비시켜 이성(異性)의 기를 빨아 먹고 사는 독고(毒鼓)의 일종이지.]
[흠.......]
[흔히들 알고 있는 음양고(陰陽蠱)보다 더 지독한 것일세.]
[.......]
[공명.......]
[네, 사숙님.]
[지금 즉시, 백도문의 수뇌에게 알려 구원신의의 행적을 수소문하도록 해라. 지금 그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네.]
[네, 알겠습니다.]
소림사에서 불어오는 음산한 바람과 함께 어둠은 짓게 깔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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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도문.......
백도문의 금빛 찬란한 현판 아래 문지기와 7명의 거한들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7명의 거한들은 그 모습이 무척이나 초췌하고 옷차림새가 세외인 같아서 문지기들이 안으로 들여보내주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아, 글쎄 안된다니까 그러시네!]
[이 서신을 맹주께 전해주기만 하면 되는 것일쎄.......]
[허허, 이것 참 곤란한데.......]
문지기는 허공을 보면서 나직히 말했다.
무언가를 바란다는 뜻.......
7명의 거한중 하나가 그것을 눈치챘는지 가죽주머니 하나를 그의 앞에 내밀었다.
[이거, 얼마 안되는 거지만.......]
문지기는 그 주머니를 받아 살짝 열어보더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어디 그 서신을 이리 줘 보시오.]
그는 그렇게 말하며 뺏다시피 그 서신을 빼들어 손에 쥐고는 펼쳐 보았다.
동시에, 문지기의 안색이 파리하게 변하더니 말까지 더듬더듬 거렸다.
[왜, 진작에 말씀하시지 않으셨소? 구원신의의 서신을 갖고 왔다고 하면 내 즉시 보고했을 것을......!]
그는 그렇게 말하며 받았던 가죽주머니를 다시 돌려주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7명의 거한들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
[역시, 그 분은 하늘이 내려주신 분이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형님.......]
이들 7명의 거한.......
얼마전 곤륜에서 고진과 만난 북해칠호법이라 불리우는 거한들이었다.
일각(一刻)이 지나기도 전에 좀전에 들어갔던 문지기가 뛰어 나왔다.
[맹주님께서 만나보시겠답니다. 어서 드시지요.]
북해칠호법은 성큼 백도문 안으로 들어갔다.
문지기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간 곳에는 가운데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는 중년인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자리에 앉아 있지 않았다.
[그대들이 이 서신을 갖고 왔는가?]
중년인이 나직하면서도 위엄있는 음성으로 물었다.
[그렇소.]
북해칠호법의 맏이인 석표웅(晳慓雄)이 대답했다.
[우리들은 북해신궁의 일곱호법사들로 도움을 청하러 중원에 왔소. 반도 갈승천은 궁주를 죽이고 자신이 그 자리에 앉았소. 그는 마교와 결탁하여 중원을 칠 것이오. 그러니 그를 처단해 주고, 북해신궁을 수복할 수 있게 도와 주시오!]
간단하면서도 할말은 다했다.
[백도문은 세외의 세력다툼엔 관심이 없소.]
무겁게 내뱉어져 나오는 사마천의 음성에 북해칠호법의 안색은 일순 먹구름이 끼었다.
(뭔가 잘못 되어 간다.......)
사마천의 음성이 다시 이어졌다.
[게다가 갈승천이라는 사람이 마교와 결탁했다는 증거도 없지 않소. 내 구원신의의 이름을 봐서라도 도와주소 싶지만.......]
그는 말꼬리를 흐리며 북해칠호법을 내려다 보았다.
그때였다.
[하하하! 맹주, 솔직히 이미 나 갈승천과 얘기가 끝났다고 얘기하시지 그러시오!]
북해칠호법은 순간 가슴이 털컥 내려앉고야 말았다.
(호랑이를 피해 동굴로 숨었더니, 그곳이 호랑이굴이었을 줄이야...)
북해칠호법중에서 성질이 가장 급한 셋째 혁사강(革駟剛)이 자신의 무기를 집어 들고 갈승천을 향해 공격을 하려고 했다.
[삼제!]
[삼형!]
나머지 북해칠호법이 말릴 사이도 없이 앞으로 뛰쳐나간 혁사강은 검을 휘두르며 갈승천과 겨루었다.
갈승천은 비웃음과 함께 가볍게 발을 구르더니 허공으로 뛰어 오르는 것이었다. 동시에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안개.......
[이것은......?]
그의 무공을 보고 있는 사마천마저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가 어찌 그가 펼치는 무공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27여년전, 중원을 피바람으로 몰아간 옥수혈랑의 무공인 옥수혈경과 유사하지 않은가....... 그 상황을 겪어본 그가 그 끔찍함을 어찌 모르겠는가?
[갈궁주! 멈추시오!]
사마천의 혼원삼공(混元三功)이 펼쳐지면서 갈승천과 혁사강의 사이를 갈라 놓았다.
[본당에서 피를 보게 할 수 없소!]
[하하핫! 혁사강, 네 녀석의 목숨이 잠시 연장되었구나!]
[이......!]
혁사강은 이를 갈며 하는 수 없이 물러 나야 했다.
[백도문은 중원의 영원한 빛이라고 하던데, 이제보니 타락하고 부패해 악취가 곳곳에서 풍겨져 나오는구나! 백도문을 믿고 찾아온 우리가 멍청했다! 진작에 천외검법의 후인인 그 분을 뫼셨어야 했는데......!]
칠호법중 넷째인 태율군(太聿君)이 한스러움을 자아내듯이 내뱉은 말이었다. 그의 말에 다른 호법들도 거침없이 수긍을 하는 것이었다.
[천외검법의 후인......?]
갈승천의 눈초리가 날카로와졌다.
조금전까지 여유만만해 보이던 얼굴이 일순간에 일그러졌다.
[두려운가 보군.......]
[그렇겠지. 천외검법은 신선궁의 절대비급에 수록된 지상무고(地上無故)한 천상의 검법이니까.]
듣고만 있던 사마천의 눈초리도 무섭게 변해만 갔다.
(신선궁의 절대비급인 천외검법....... 그것만 손에 넣으면 중원은 확실하게 내 손안에 들어오게 된다! 그렇게만 된다면 성왕교와 견제할 필요도 없고 하찮은 세외의 시부렁한 놈들한테까지 신경을 안써도 된다. 흐흐흐흐......!)
[당장, 그 자의 정체을 밝혀라!]
갈승천의 외침과 함께 그의 검이 출수가 되었다.
[어림없는 개소리!]
북해칠호법들도 제각기 무기를 꺼내들고 대항하며 밖으로 벗어나려고 했다.
[들어올땐 너희들 발로 들어왔을지 몰라도 나갈땐 어림없는 짓이다!]
사마천의 외침과 함께 우르르 몰려드는 백도문의 수하들.
[저들은 마교가 보낸 첩자들이다! 생포하는 자에게는 큰 상을 내리겠다!]
사마천의 지시가 떨어지자 수하들은 목숨도 도외시한체 그들에게 달려들었고, 칠호법들은 어떻게 하든지 이곳에서 벗어나려고 바둥거렸다.
백도문의 수하들의 무공또한 헛것으로 볼 것이 아니었다.
그들도 내놓라는 명문정파의 수제자들....... 그러나 30갑자를 웃도는 그들의 무공에 무너지는 볏단처럼 쓰러져갔다.
(저들의 무공이 실로 상상을 초월하는구나!)
사마천도 더 이상 도외시할 수 없었던지 칠호법을 향해 무공을 펼쳤다.
이를 가만히 지켜볼 갈승천도 아니었다.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것처럼 합공을 펼치며 칠호법들을 궁지에 몰아넣기 시작했다.
[우우웃......!]
칠호법도 위기감을 느꼈던지 자신의 무공을 최대한 펼치며 밖으로 빠져나왔다. 허나 기력이 상당히 쇠퇴해져 버린 것이었다.
[대형, 저희들이 최대한 시간을 끌테니 어서 탈출 하십시오!]
[무슨 소리냐? 내 어찌 너희들을 두고 떠나겠느냐?]
[저희들은 더 이상 버티고 있을 힘이 없습니다.]
[.......]
[빌어먹을......! 대형, 어서 가시오!]
[이제.......]
[대형, 시간이 없소!]
[오제, 대형을 따라 가라! 어서!]
[이형......!]
칠호법의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났다.
대형, 석표웅과 오제, 막천우(幕天宇)는 허공으로 치솟았고, 그들을 엄호하며 자신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고 있는 나머지 다섯명의 거한들.......
그들의 무공을 합세하자 사마천과 갈승천도 뒤로 수십보를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
[후후후.......]
혁사강이 처연한 웃음을 터트림과 동시에 한줌의 핏덩이를 토해냈는데 그 핏덩이 속에는 히멀건 살점들도 더럭 보였다. 내장이 파열되어 함께 토해진 것일 것이다.
[갈가놈아, 네 놈의 야망도 여기서 끝이다.......]
[삼형, 말 수를 아끼시오.......]
[사제, 네 놈도 말을 할 줄 아는구나....... 흐흐흐.......]
[아우들......, 마지막으로 해야될 것이 있지 않은가?]
[당연하죠!]
그들의 표정은 시무룩해져만 갔고, 위기감을 느낀 갈승천과 사마천은 재빨리 몸을 돌렸다.
<퍼퍼퍼어어엉......!!>
다섯구의 몸뚱아리들이 일제히 폭죽 터지듯이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자신의 내공을 집결시켜 동귀어진을 하고야 말았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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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도문에서 간신히 도망쳐 나온 석표웅과 막천우는 형제들을 잃은 슬픔을 참지 못하고 울분을 터트리고 말았다.
[이럴 수는 없어! 이럴 수는.......]
[형님....... 그 분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그 분도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계실 겁니다.]
막천우는 비통함을 참으면서 말했다.
[그래, 그 분을 찾아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 백도문이 간악한 무리들과 결탁하다니....... 그 분은 아직 곤륜에 머무르고 계실 것이다!]
두 사람은 더 이상 비통함을 한탄하지 않고 즉각 몸을 날려 곤륜으로 향했다. 고진일행이 머물고 있는 곤륜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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